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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Feb 08. 2021

한 사람의 가치

심심할 때 글쓰기

각박한 세상이다. 산다는 행위가 힘이 드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살기 위한 나만의 방법,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순간 그 사람과 마주하는 모든 상황들이 불행해진다. 같이 있을 때도 떨어져 있을 때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쓴다, 아주 많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번씩 싫어질 때가 있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사그라들거나 상대와의 접점이 없어지며 기억에서 사라지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 두 사람.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그는 내 선배였다. 참고로 내가 다녔던 학교, 그 당시의 분위기와 예체능이라는 교집합 덕에 '군기'문화(?)가 남아있었다. 그와 연이 닿았던 건 학생회, 그리고 모자랄 정도로 착해빠진 내 성격 덕이었다. 항상 돈이 없던 선배. 집안이 가난했던 건지 빚이 있던 건지, 자세한 이유를 물어보지 않아 모른다. 잘 곳조차 없다는 말에, 나 역시 가난의 서러움을 잘 알기에 내 자취방에서 지내게 했다. 그 순박함이 불행의 시작인지 모른 채.

 인간관계의 대부분 문제들은 사소하다.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한다? 말도 안 된다. 이유는 있다. 다만 남들한테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사소할 뿐이지. 나 역시 작은 것 때문에 틀어지기 시작했다. 음……. 같이 산지 한 달이 지났을까? 그 사람이 편해진 건지 이제야 내 눈에 띈 건지 모르겠다. 선배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었던 것 같다. 밥을 해주면 최소한 설거지는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집안이 더러워지면 치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염치가 없던 걸까 예의가 없던 걸까 혹은 개념이 없던 걸까? 나와 생각하는 게 많이 다른가? 내가 빡빡하게 생각하는 걸까? 싶더라.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고 합리화했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며칠 뒤, 내가 선배에게 사람으로서 정말 실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항상 돈이 없다며 선후배에게 밥을 얻어먹던 그 사람. 돈 없다는 말은 입에 붙었지만 한정판 신발이나 명품은 좋아했던 사람. 그땐 그런 사람이란 걸 왜 몰랐을까? 그는 후배를 만난다며 나갔다. 한참 뒤에 들었던 소식인데 그는 여자 후배 세 명을 데리고 커피와 디저트를 사줬단다. 나는 그때 누구한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가슴속부터 스멀스멀 역겨운 기분이 지배했다. 마음이 뒤틀린다. 나에겐 항상 돈이 없다 해놓고, 다른 '여자'후배에게 커피 사줄 돈은 있던 걸까? 내 호의는, 나란 사람의 가치는 그 커피 한 잔보다 못한 것이었을까? 

 커피 한 잔 비싸 봐야 5 ~ 6천 원 정도 하려나? 한 학기를 넘게 재워주고 먹여줬던 나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고작 만 원도 안 된다는 사실에 허탈했다. 이 더럽고 역겨운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가 않더라. 굳이 그 선배에게 찾아가 욕하거나 따지고 싶진 않다. 그냥 나랑은 안 맞았던 사람이라 생각하고,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할 부류의 인간이라 생각하련다. 

나이 불문,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내게 가르침을 준다. 

나는 그 사람을 반면교사 삼아 살아가려 한다. '사람'과 '사람', 최소한의 예의에 대해 곱씹었던 날.

-

'나'를 훼손시키는 사람을 굳이 만날 필요는 없다. 

유한한 시간, 나를 사랑해 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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