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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Mar 13. 2021

내 글인데 내가 없어요.

심심할 때 글쓰기


글을 쓴다. 내 글은 '내' 생각과 주관이 담긴 글이다. 평소에 두둥실 떠다니던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고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글쓰기라는 행위가 그러하다. 나는 그 행위가 재밌다. 내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그 일련의 행위들, 헌데 요즘은 즐겁지가 않다.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내 글인데 내 생각이 없는 글이기에. 그런 글쓰기는 즐겁지 않다.


지속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정말 많은 협찬 연락이 온다. 화장품을 비롯한 생활용품부터 마사지나 눈썹 문신 같은 뷰티에 관련된 연락, 심지어는 성형수술까지……. 참 많이도 왔다. 싫진 않다. 아니다, 좋았다. 정말 기분이 좋더라. 연락이 오고 협찬을 받을 때까지는 좋다. 문제는 이후의 글쓰기에서 찾아온다. 업체 사장님께서 직접 연락 온 경우에는 가이드라인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솔직 담백하게 써달라는 말씀뿐. 다만 한 다리 걸쳐(이를테면 체험단이라든지) 소개를 받은 경우, 어마 무시한 가이드라인 덕에 글을 쓰는 게 곤욕이다.


며칠 전 체험단을 통해 가게를 갔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아무도 인사하지 않더라. 그곳에 있던 인원만 6명 정도 됐는데……. 다들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더라. 여기서 살짝 의아했다. 보통 손님이 오면 인사를 하고 맞이하지 않나? 사전에 내가 가는 곳이 굉장히 친절한 곳이라고 설명을 들었기에 적잖이 당황스럽더라.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들 자기 일에 심취한 나머지 손님이 들어오는 걸 못 들을 수도 있을 테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다른 손님이 들어올 땐 모두가 일어나서 인사하더라. 그때부터 기분이 썩 좋진 않았는데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웃으면서 마무리하고 집에 갔다.


집에 와서 주어진 가이드라인에 맞춰 글을 쓴다. 주문한 가이드라인은 업체에 대한 '친절'을 강조할 것 그리고 내가 느낀 서비스를 솔직하게 작성하기다. 머리가 참 아프다. 내가 느낀 건 불친절인데 친절을 강조하라고 하니 미칠 노릇이다. 끝없는 갈등 속에 결국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느낀 것들을 버린 채 글을 썼다. 나를 버리니 참 간단하게 쓸 수 있더라.


갑자기 한 선배님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며 겉으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적이 많았다. 오랜만에 선배 생각이 나서 연락했고, 위에 적은 이유 때문에 글이 재미없다고 말씀드렸다.


"갈림길이지. '블로거지'가 될지 '작가'가 될지 네가 결정할 일이지. 그렇게 네 생각, 네 아이덴티티를 죽여가며 글을 쓴다면 그냥 뭐 그런 사람이 되는 거고, 그걸 넘어가면 작가가 되는 거지. 잘 생각해. 어차피 네 인생, 네가 책임지는 거니까"


나는 왜 블로그를 시작했을까?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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