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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무개 Mar 22. 2021

나는 당신의 가십거리가 아닙니다.

심심할 때 글쓰기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고요한 점심시간,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내게 묻는다. 그 의미심장한 질문에 나를 돌아본다. 말이 없다라……. 나, 정말로 말이 없던 사람이었나? 20살 무렵의 나를 떠올려본다. 연극과에 합격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났던 나. 그때의 나는 굉장히 활발하고 순수한 소년이었지. 사람 만나는 걸 정말 좋하는 그런 아이. 비록 군기가 존재하고 몇 가지 말 같지도 않은 부조리가 존재했던 학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사람들이 좋았다. 

그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웃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선배와의 식사 자리나 술자리가 불편하다고들 하지만 정말 재밌었다. 밥을 얻어먹는 것도 좋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도 즐겁고. 1학년 땐 정말 내 돈 주고 밥 먹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했던 나, 말 많았던 내가 언제부터 말이 없어졌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학생회 엠티가 시발점이더라. 엠티 답사라는 명분으로 학생회 사람끼리 엠티를 갔다. 낮 시간대는 여러 군데를 탐방하고 밤에는 알코올을 들이 부었다. 푸르다 못해 검게 물든 새벽녘의 대천 앞바다, 그 술자리에서 참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술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 좋아하는 이성 이야기. 선배들은 절대로 말 안 한다는 약속을 했고, 순진했던 나는 그들 앞에서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을 말했다. 

"방금 이야기는 이 술자리에서만 묻는 거야. 다들 알겠지?"

그 음성과 톤이 정말 멋있게 느껴졌다. '그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잠깐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동기부터 시작해 고학번 선배까지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을 알고 있더라. 놀리는 것도 짜증 났지만 그냥 그 친구와 사이가 뗀뗀해진 것 같아 괜히 미안하고 민망했다. 결국 그 친구와는 어중간하게 어색해졌고, 그렇게 멀어졌다. 내게는 큰 사건이었는데 선배들한테는 잠깐의 유희였던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나는 진심을 표현했을 뿐인데, 그들에게 있어서 나라는 사람은 그저 순간의 가십거리로밖에 안 보였나 보다.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그 사건을 기점으로 나는 말을 줄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침묵이 나쁘진 않다. 조용히 들어주기만 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내게 진심을 내비치더라. 다만 선배들과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더러운 일이라도 그냥 나만 알고 끝냈다. 어쨌든 이 사람이 나를 믿고 말한 것이니. 

남이 뭘 했는지 왜 그리들 신경 쓰는지 알 수가 없다.

중요한 건 타인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나 그리고 내 앞에 앉은 당신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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