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할 때 글쓰기
"저, 아버님. 그거 만지면 안 되는데……."
"신기해서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계속 가습기의 버튼을 눌렀다. 삐, 삐, 삐. 반복되는 기계음.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두 돌, 세 돌된 아기들이 남의 물건을 만지는 건 그러려니 한다. 아이들은 예의와 예절을 모르기에, 알려주면 된다. 근데 어른은 아니다. 30년 넘게 살았다면 학교와 회사를 비롯해 충분히 사회생활을 했을 텐데…….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걸까? 대체 어떻게 자랐길래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상식이 아니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가습기를 만지는 아버님.
내가 그만 만지라고 열댓 번 정도 말하자 그는 결국 자리로 돌아갔다. 사람 간의 기본적인 예절이 보이지 않는 순간, 오늘 나의 '상식'이 파괴당하는 날이었다. 참고로 이곳은 회사다. 그의 가정집이 아닌 '남'의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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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쯤 인터넷에서 이슈가 됐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영국이 섬이란 걸 아는 건 상식인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 당연히 과반수가 섬이라는 걸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비율은 비슷했던 걸로 기억한다. 섬이라는 걸 아는 사람 반, 모르는 사람 반. 사실 '지금'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 없는 지식일 수 있다. 이런 상식이 사는데 필요 없을 수는 있다.
상식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거나 마땅히 알아야 할 지식이다. 그래, 사실 상식이란 게 살아가는데 중요하지 않다. 없어도 살 수 있는 게 상식이니까. 영국이 섬인지 아닌지 뭐가 중요한가? 우리나라의 국경일이 몇 개인지 왜 국경일로 지정됐는지 뭐가 중요한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몇 명이었는지 중요한가? 최소한 타인에게 민폐만 안 끼치면 되는데, 최소한의 상식이 없는 사람은 자의든, 타의든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 몰상식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피해 받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개념이 없다.
시대에 따라 인재상이 바뀐다. 사람이 바뀌니 국가가 바뀌고 시대의 흐름 역시 바뀐다. 요즘 무례한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최소한의 배려는커녕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음해하는 자들이 늘었다. 이것이 현대의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인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시대를 만들었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기 때문에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정상'이라고 부를만한 사회도, 사람도 보기 드물다.
나는 지금처럼 기초적인 상식이 점점 옅어지는 사회가 무섭다. 상식이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자라날까?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커서 사회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면 내가 사는 곳은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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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경계가 무너지다 보면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상식의 부재가 인류에게, 하다못해 나나 다른 친구들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