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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Aug 22. 2021

[소설]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1)

With (by My Aunt Mary)

한 10년 전? 맞나? 내가 언제 졸업했더라? 뭐 대충 10년이라 칩시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의 시작은 바보놈 때문이라 생각해요. 아, 바보는 제 친구 별명이예요. 왜 바보냐면… 그냥 바보라서요.


여튼 약 10년 전 2월쯤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식만 앞둔 시점에서 부랴부랴 취업준비 한다고 열심히 토익공부 하고 있을 때 였어요. 우리학교가 집에서 버스타고 1시간 걸리는 거리라, 학교갈 일 없을 때는 집 근처 K대학교 도서관에 침투해서 공부하고 그랬어요. 그 학교 다니는 바보 학생증 빌려서요. 걔는 나랑 반대로 집에서 K대학교까지 버스타고 1시간 걸렸거든요. 어쨌든 그날도 그렇게 공부하는데, 왜 있잖아요 그럴때. 공부는 드럽게 안되고, 괜히 노을 지는거 보니까 술 땡길 때. 나만 그렇다구요? 사소한 건 넘어가요. 그래서 그날 공부 때려치우고 바보한테 전화걸었죠. 내가 사줄테니 술이나 먹자고. 근데 이 인간이 여자친구 만나러 가야 된다면서 거절하더라구요. 안타깝지만 어쩌겠어요? 여친 만나러 간다는데 가지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이미 도서관은 나왔고, 다시 들어가긴 싫고 해서 그냥 게임이나 한판 하자 생각하고 근처 오락실로 갔어요. 지금은 문 닫았지만, 그때 그 학교 근처 오락실이 격투게임하고 리듬게임 하는 사람들 성지였거든요. 꽤 유명했어요. 저도 격겜이랑 리겜 꽤 좋아했고요. 아 혹시 ‘푸쉬’라는 게임 아세요? 예. 그거, 화살표 올라오는거 타이밍 맞춰서 해당 발판 밟는 춤 게임요. 역시 한때 유행한 게임이다 보니 잘 아시네요. 갑자기 푸쉬를 왜 얘기했냐하면요…


그 오락실 들어가면 입구 바로 앞에 푸쉬가 있거든요. 근데 낯익은 사람이 플레이를 하고 있더라구요.



친분은 거의 없었지만,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음… 이건 설명이 좀 복잡긴 한데… 일단 정리하면 걔는 바보 여친의 동아리 선배였어요. 나랑 바보는 원래 이 오락실 자주 들렸고, 바보가 이 오락실에서 여친을 만나게 됐거든요. 여친이 K학교 만화동아리였는데, 언제부턴가 만화동아리 내에서 리듬게임이 유행해서 그 동아리원들이 오락실을 자주 찾게 됐어요. 걔도 그 중 한명이었고요. 바보랑 같이 오락실 자주 가던 저는 어쩌다 보니 그쪽 동아리 사람들과 마주치며 인사정도는 하는 사이가 됐죠. 복잡죠? 다시 정리해 드릴께요.


1. 나랑 바보는 오락실을 자주 갔다.

2. 바보 여친과 그 동아리 사람들이 자주 오락실을 들렀다.

3. 나는 바보 여친 덕에 그 동아리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대충 이해했죠? 여하튼 걔가 푸쉬를 하고 있었죠. 본인은 아니라지만 걔가 상당한 푸쉬 고수였어요. 그냥 ‘웃기지 마라 제발좀 가라’ 가사에 맞춰 방방 뛰는 수준이 아니라, 뭐랄까? 발바닥으로 키보드 300타 이상 치는 속도? 저도 앵간히 푸쉬 한다고 생각했는데, 걔는 그 차원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였죠. 오락실 들어가자마자 난 걔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죠. 저게 사람인가?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리고 게임이 끝나고 나서 뒤에서 자길 쳐다보는 저를 발견했어요. 선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더라구요. 엄밀히 말하면 선배는 아닌데, 걔가 바보를 선배라고 불렀기 때문에 저도 그냥 선배로 불렀나봐요. 마땅한 호칭도 없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오락실에서 만나 서로 하고싶은 게임하면서 구경도 하고, 잡담도 나누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저녁시간이 되고, 서로 할일도 없고, 내가 술이 땡긴것도 있고, 그래서 그날 저녁에 같이 술이나 땡겼죠.


아, 물론 이때는 별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안타깝게도 술마시고 뭔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땐 뭐랄까… 걔가 생각보다 술을 잘 마셨고, 얘기를 하다 보니 은근 나랑도 얘기가 잘 통했어요. 학교는 다르지만 우연히도 전공이 같았고, 게임이랑 만화 좋아하고, 음악은 락 계열을 좋아하고. 덤으로 나랑 안 놀아 준 바보 뒷담화도 함께 까고. 그때의 느낌은 아, 좋은 술 친구 생겼다. 그 정도였어요.


그날 이후로 서로 가까워… 아니다. 가까워진다는 말 보단 친함? 친분? 아, 친분이 점점 쌓였다고 말하는게 맞는거 같네요. 따로 약속을 잡은건 아니지만 오락실을 가면 만날 수 있었고, 그렇게 같이 게임도 하고,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종종 저녁을 먹거나 술도 같이 마시고요. 자취방이 우리집 근처라 집에 같이 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나랑 놀아주는 좋은 동생 하나가 생겼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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