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가 (by 강백수)
나도 알아요. 난 절대로 인기있을 타입은 아니예요. 키는 165cm밖엔 안되고, 살만 뒤룩뒤룩 쪄서리… 그래도 그땐 이것보단 한 20kg은 덜 나갔어요. 지금하고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슬림하다마는, 그래도 당시 기준으로도 살은 좀 찐 편이었죠. 뚱뚱보단 통통하단 느낌? 지금은 왤케 쪘냐구요? 뭐… 직장생활 경력과 함께 달라붙은 것들이랄까? 그것말고도 나름 합리적인 이유… 아니 핑계는 있는데, 그건 좀 있다가 다시 얘기해 줄께요.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그땐 성격이 꽤 소심했고, 만화랑 게임 좋아하고, 취미랍시고 하는게 커피고, 사람 만나는거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인기가 없을 수 밖에 없죠. 연애는 당시 기준으로 대학때 후배랑 한번? 그것도 100일만에 깨졌어요. 솔직히 말해 그땐 연애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때 사귄 후배한텐 미안하지만, 이래저래 연애한답시고 붙잡히는게 싫었거든요. 비오면 같이 우산 써야되고, 식당에선 서로 떠 먹여줘야 되고, 시험공부땜에 바빠죽겠는데 연락해야되고… 지금 생각하면 내가 바보였고, 때문에 벌 받은 건지도 몰라요. 이거 얘기할라고 한 건 아닌데… 어쨌든 술 마시러는 잘 다녔지만, 클럽다닌다거나 여자만난다거나 그런건 없이, 내 입으로 얘기하긴 그렇지만 참 순둥순둥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걔는 나랑다르게 상당히 활발하다고 생각했어요. 모임도 많이 다니고, 아는 사람도 많고, 남자 여자 신경안쓰고 누구나랑 잘 어울렸죠. 좀 보이쉬한 느낌이랄까? 아, 그런 말 있잖아요. 섬머슴아. 딱 어울리는 말이네요. 만화를 좋아해서 K대학교 만화동아리에 가입했고, 덕분에 바보여친과 바보, 그리고 저를 알게 되었죠. 동아리 사이에서도 은근 인기가 많았나봐요. 음… 지금 드는 생각인데 만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주님 스타일 보단 성격 털털한 친구같은 여자한테 끌리는 경향이 있나봐요. 어쩌면 저도 그랬을수도… 아니, 아니다. 난 그렇게 만화 안 좋아해요. 그렇다구요.
성격은 꽤 다른데 은근 공통점은 많았어요. 일단은 전공이 같다는 점. 그것도 나름 희귀하다고 볼 수 있는 문헌정보학. 문헌정보학이 뭐냐구요? 도서관학. 그냥 사서 키우는 학과라 보시면 돼요. 여튼 전공이 같고, 만화랑 게임, 특히 리듬게임이랑 격투게임 되게 좋아하더라구요. 리듬게임이야 전에 푸쉬로 설명 다 했고, 격투게임은 잘 못하는데 구경하는거 되게 좋아하더라구요. 그 ‘싸움의 왕’ 아시죠? 지금이야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나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격겜. 괴수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나름 그 겜 고수거든요. 다른사람과 대전하며 연승하고 있으면 어느새 걔가 뒤에서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더라구요. 콤보라도 한셋 날리면 되게 놀라던데, 그런 반응을 보면 괜히 우쭐해 지더라구요. 그 외에 음악은 락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음식은 대학로 골목에 있는 라면. 이것들도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얘기할 때 이래저래 소재거리가 잘 나왔던 거 같아요. 외모는 솔직히 말하면 평범한 정도… 이건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냥 평범했어요. 그나마 특징이라면 포니테일을 고수했다는 거 정도? 솔직히 말해 제가 포니테일을 좋아하긴 했어요.
편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같이 있는게 편하더라구요. 나한테 편한 사람이야 아까 얘기한 바보랑 다른 친구들 셋 정도 밖에 없었거든요. 물론 얘들보단 편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나에게 편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여자애. 그땐 별 생각이 없었지만, 아마 그때부터 점점 끌리기 시작했을꺼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난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에게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느 날, 여름으로 막 접어들게 된 무렵, 평소와 같이 오락실에서 만나고 게임하고 같이 술 한잔하고 들어가는 길이었어요. 그날 술을 좀 많이 먹었어요. 갑자기 날씨가 더워져서인지 그날따라 맥주가 술술 잘 넘어가더라구요.
집에 가면서도 기억도 잘 안나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 있었죠. 그러다 음… 내가 그때 무슨 얘길 했지? 아마 취업관련 얘기였을꺼예요. 그때 한창 이력서 적어 내고 면접 다니고 그럴 시기였거든요. 면접도 계속 떨어지고… 여튼 그런 얘기 했었던거 같아요. 그렇게 내 얘기를 하는데 걔가 나한테 이렇게 얘길 하더라구요.
형은 잘 될 거예요.
이 말은 확실히 기억나요. 기억할 수 밖에 없어요. 형이라고 불러줬을때 갑자기 두근거렸거든요. 뭔 소리나고요? 음… 지금 생각하면 참 이해 안되는데… 그 당시 여자애가 친한 오빠한테 오빠라고 안부르고 형이라고 부르는게 은근 유행했었어요. 왜 그런게 유행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당시 바보 여친 말로는 오빠보단 형이 더 특별하고 가깝단 느낌이 든다나 뭐라나? 그때 바보 여친이 바보한테 형이라고 불렀거든요. 지금은 야라고 부르지만요. 여튼 그땐 그게 뭔소리여라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걔한테 형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이해되더라구요. 가까운 사이라는 느낌. 내가 걔한테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 꽤 가까이 있구나 라는 기분. 집에 들어가서도 잊혀지지 않는 그 말에 잘때까지 계속 두근거렸죠. 그래요. 그때부터 걔한테 반했어요.
그리고 며칠 후, 면접본 곳에서 합격통지 문자를 받았어요. 경기도에 있는 H대학교 도서관. 그렇게 내가 살던, 가족과 친구, 걔가 있는 대구를 떠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