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좁은 여학생 (by 브로콜리 너마저)
솔직히 이래저래 얘기했지만 태기는 이 이야기에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사람이라면 역시 쭈가 있죠.
이름은 주연인데, 걔랑 친구들 사이에서는 쭈라고 불리더라구요. 그때문에 나도 쭈라고 부르고 있고요. 의외로 입에 착 감기는 별명이더라구요. 걔가 대학와서 만난 친구인데, 같은 학과이고 동아리도 같았어요. 그리고 나름 잘 맞아서 금세 친해졌대요.
이래저래 걔랑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쭈를 알게 되었어요. 언제 처음 만났더라… 아, 맞다. 대구에 치맥페스티벌 했을 때. 나랑 바보, 그리고 걔 커플이랑 치맥페스티벌 갔는데, 걔가 쭈를 소개해 줬어요. 쭈도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왔다가 잠깐 걔를 찾아왔거든요. 그땐 별 생각은 없었어요. 안녕하세요 정도 인사만 하고… 솔직히 그때 쭈 얼굴도 기억 잘 못했거든요. 그렇게 걔 아는 사람 한명 봤다, 이정도로 끝날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인연… 아니 악연의 시작일 줄이야 원…
제 직장, 그러니까 H대학교 도서관에는 팀이 2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어느 날 얘가 다른 팀 신입직원으로 들어오게 된 거예요. 야, 사람이 이렇게도 만나게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면 기쁘기도 했어요. 쭈 때문에 걔하고 좀 더 얘기 많이 하고 가까워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쭈랑 걔랑 얘기해서 도서관 업무 공유라는 명목하에 단톡방도 만들어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죠.
그리고 이노무 가스나가 웬수가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나도 한 소심 하는 편이지만, 쟨 진짜로 완전 소심 그 자체고, 하는 거 보면 답답하고, 생각은 하고 사는 건지… 남한테 말 거는게 무서워서 날 경유하거나, 뭐 막히는 거 있으면 찾아볼 생각은 안하고, 묻기만 하고… 거기다가 만화나 게임에만 빠져있어서, 아니 피곤하면 잠이나 일찍 잘 것이지, 왜 만화보다 밤새고 나보고 피곤하다고 난리치는 건지 원… 학교에서 말 안하기로 유명한데, 누가 말 걸어도 예, 아니오만 하거나 그냥 헤헤 웃고 넘어간대요. 전에 회식에서도 그러길래 대답좀 하라니, 말 계속 걸까봐 무섭다나 뭐라나? 에휴… 말 없기는… 말 많아 죽겠구만. 아, 전에는 이런적도 있었어요. 자기 자취방에 벌레가 큰게 들어왔는데, 무서워서 부엌에 가두고 문닫고 출근했대요. 그리고 저보고 벌레 좀 잡아달라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애도 아니고 그걸 왜 못잡아요? 나도 벌레 싫은데? 아니, 자기 집 일이면 자기가 해결해야 될거 아니예요? 그래서 벌레는 어떻게 했냐고요? 음… 그게… 치킨사준다길래…
에이,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여튼 성격만 보면 걔량 쭈는 완전 반대였죠. 근데 친한거 보면 참… 하긴, 내 주변에도 답답한 놈도 있고, 대충 될대로 되겠지 하며 사는 애들도 있으니… 생각해보니 성격이랑 친한건 별개 문제긴 하네요. 하여튼 걔랑 쭈는 되게 친했어요. 서로 만나면 팔짱끼고 다니고, 선물도 잘 챙겨주고, 좋은거 생기면 나눠갖기도 하고… 너무 친하다보니 동성애 아닌가라는 오해도 좀 있었나봐요. 뭐… 내가 볼 때는 그정도는 아녔으니까요. 참고로 내가 대학 다닐때, 그러니까 그때 문헌정보학과 동기들이 남자 5명, 여자 30명. 원래 여자가 많은 학과였거든요. 지금은 좀 덜하다마는. 그래서 나름 여자들 생태계를 경험해 본 결과, 저 정도는 친한 여자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더라구요.
난 말이예요. 쭈가 진짜 싫었어요. 아까도 얘기 했듯 답답 그 자체. 걔처럼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좋지, 답답하고 공주님 같은 사람은 그닥 별로예요. 별로라고 생각해요. 아뇨,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싫었어요.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나는 거들떠 보지 않고 쭈만 계속 챙겨주는게 싫었어요. 둘이 만나고 싶은데 중간에 쭈가 낀다거나, 아니면 쭈를 만나야 되서 나와 못만난다거나.
그냥 쭈를 질투했을 뿐이예요. 뭐, 진짜 그뿐이었던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