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사랑이 될까봐 두려워서 (by Flower)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렇게 이도저도 않는 관계는 꽤 오래갔어요. 그냥 친구로 지내는 거였죠. 한번씩 밥먹으러도 가고, 영화도 볼 때도 있고… 아, 에바랜드도 간 적 있었구나. 쭈도 같이 간건 아쉽지만, 그래도 쭈가 없었으면 걔도 놀이공원 올 생각 안했을거예요. 그렇게 2년 정도 지냈었던거 같아요. 아, 여전히 난 선배로 불리긴 했어요. 그날 형이라고 불린 건 역시 술김에 그랬던 거 같아요. 호칭 정도는 바뀌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뭐 그려려니 했어요. 듣다보니 선배도 딱히 나쁘지 않더라구요.
2년, 태기는 이미 전역을 했죠. 그런데 걔는 태기 언급을 안하더라구요. 얘가 전역한 것도 바보한테 들어서 알게 되었어요. 뭐랄까? 관계가 흐려졌다는 느낌? 분명히 쭈는 아직 걔랑 태기가 만난다고 얘길 했어요. 하지만 걔는 남자친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언급을 안해도 적당히 눈치채게 됐죠. 어쨌든 헤어졌거나,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 솔직히 둘이 헤어지길 바랬다? 그런 마음이 없을수가 없죠. 그래서 걔와 태기 관계가 끝나갈 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 기쁜 마음도 있었어요. 반성해요. 진짜… 그런 마음 먹으면 안되는 거였어요.
그렇게 2~3달 정도 흘렀나? 그날도 걔가 일하는 도서관에 들러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있었죠. 무슨 얘길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갑자기 걔가 얘기하더라구요. 선배, 저 태기랑 헤어졌어요. 예상은 했지만, 갑자기 그런 얘길 들으니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위로라도 해야 했는데난 그냥 어… 으응 하며 아무말도 못했어요. 걔는 웃으면서 얘기 했지만, 묘하게 쓸쓸해 보이더라구요. 위에 말했듯이 기쁜 마음이 좀 있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많은 없었어요.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집에 갈 때 하나밖에 생각 안들더라구요. 잘해주자. 쓸쓸해 하지 않게…
그 다음주, 또다시 그 도서관을 찾아갔어요. 걔는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구요. 이번 행사에 쓸 홍보용 삽화를 그리는 중이래요. 걔는 그림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회화같은거 보다는 만화쪽 그림을 좋아했어요. 일본만화 그림체보단 미국 카툰 느낌의 독특한 그림을 좋아했죠. 특히 좋아하는 건 파워 팝 걸. 뭔지 모른다고요? 그 인형같이 생간 초능력 여자애 셋이서 악당을 물리친다는 그런 내용의 미국만화예요. 어쨌든 좀 상상력이 많이 가미 된 독특한 느낌의 그림들을 잘 그렸어요. 그냥 흔히 말하는 잘 그린다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 느낀 것들을 잘 표현한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걔 그림을 좋아한 거 같아요. 내가 원래 개성이 강하고 느낌 충만한 것들을 참 좋아했거든요. 만화 동아리를 들어간것도 만화를 읽는것 보단, 그리는 게 좋아서 들어갔대요. 만화가가 되기보다는 일러스터가 되고 싶었대요.
그림 그리는 걔 옆에서 말동무도 되어주고, 일도 도와주고 하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러다 피곤하다고 커피 한잔 마시자고 하고, 내가 커피를 탔어요. 인스턴트였지만, 진정한 커피덕후라면 인스턴트도 맛있게 탈 줄 알죠. 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걔는 역시 커피는 선배라며 감탄했어요. 그리고 선배가 나중에 커피가게 차리면 꼭 자기를 고용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 말에 당연히 그래야지라며 웃었죠. 그리고 걔가 커피 몇모금 더 마시면서 혼자 중얼거렸어요.
나도 맘 편하게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한마디가…
그 한마디가 너무나 강렬하게, 순식간에 마음에 꽂혔어요. 혼잣말로 중얼되던 그 한마디가… 너무도 간절하게 들려서… 걔의 진심이 담겨 있어서… 걔의 소망과 꿈이 너무 커다랗게 다가왔어요. 평소에 내가 늘 얘기하잖아요. 내 꿈은 카페를 차리는 거라고. 내 이름 건 카페를 차리는 거라고. 걔의 그 소망 한마디를 들은 순간,
걔를 위한 가게를 차리자. 그래서 걔가 마음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을 주자.
그렇게 내 꿈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걔를 위해 모든걸 하겠다는 다짐을 그날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에휴… 벌써 피쳐 하나 다 비웠네요. 하나 더 주문해도 되죠? 아직 술 더 마셔야 되요. 여기까진 그냥 오프닝, 이제부터 본편 시작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