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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Sep 02. 2021

[소설]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8)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by 에피톤 프로젝트)

전에 나한테 결단력 있다고 하셨죠? 결단력 따위 원래 있지 않았어요. 처음에도 얘기했듯이 그때 난 되게 소심했어요. 진짜 기억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말이죠.


그날 이후, 걔한테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냥 마음만 먹었을 뿐, 실행에 옮기는데 너무 주저한 거 같아요. 그즈음 걔가 그림 스터디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걔가 있었던 만화동아리 선배였던 상협이랑 국이가 주축이 되어 스터디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걔가 그림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특히 그즈음에 더 그랬던거 같아요. 그래서 현직 일러스트레이터인 선배들과 어떻게 얘기하다 스터디를 만들게 됐나봐요. 매주 화, 수, 토, 퇴근 후에 스터디를 갔나봐요. 직장 때문에 일요일엔 경기도로 올라가야 하는 나로서는 토요일밖에 기회가 없었어요… 걔 직장에서 고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한테 시간은 걔가 스터디 끝난 이후, 토요일 밤 밖에는 없었죠.


그래서 토요일마다 걔가 사는 자취방 앞을 서성였어요.

그런데 그게 다 였어요. 집앞만 그저 서성이다, 전화를 몇번이나 켰다 껐다 하고,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걔를 부르지 못했어요. 주저하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괜히 고백했다가 친구관계도 깨지면 어떻게 하나? 고백은 해야 하지만, 차였을 경우의 두려움이 계속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몇시간 동안 걔 집앞에 있다가 돌아가길 한주, 두주, 세주… 진짜 바보같죠? 그래도 바보같은 짓도 여러번 하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이번주는 진짜 뭐가 되든 결론을 내자. 그 마음을 가지고 걔가 있는 도서관을 찾아갔어요.


그날도 이래저래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평소와 다름없이… 분명 평소와 다름없었을꺼예요. 어쨌든 겉모습과 달리 마음은 계속 긴장하고 있었어요. 오늘은 반드시 고백하리라. 퇴근할 때 같이 나가면서 얘기하리라. 스터디 가기 전 잠깐만 시간 내달라고 하고 붙잡으리라. 계속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었어요. 그날따라 유난히 시간이 안가더라구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퇴근을 한시간 정도 남았을 때였나?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죠. 그냥 잡담처럼, 지나가는 말처럼, 걔가 말했어요.


선배, 실은 저 상협선배랑 사귀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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