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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Dec 30. 2020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밥상에 대하여

뜨끈하고 든든한 콩나물김치죽.


누가누가 더 화려하고 대단하게 먹는지 대회를 연거 같다.


 핸드폰을 열고 타인의 일상을 보면 먹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좋은 장소에 가서, 좋은 식당에 가서, 특별한 날 상을 차리며 찍어 올린 사진들은 먹어보고 싶기도 하고 좋아 보이기도 하고 내 밥상과 비교해보기도 하며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그런 요리에 대한 기록도 좋지만 사실 우리는 그 사진 너머에 존재하는 밥상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니까, 오늘은 그 사진 너머에 존재하는 시시하지만 따듯한 한 그릇을 끓여내 보고 싶다.



다듬은 콩나물 꼬리는 버리지 않고 국물 낼 때 넣는다. 기분 탓이다.



소화기능이 시원찮은 탓에 죽을 종종 끓여먹는다. 그렇다고 아파서 먹는 것은 아니니 그저 재료를 넣고 쌀과 함께 푹 끓인다는 느낌만 있다면 무엇을 넣어도 괜찮다 여기는 것이다. 사 먹는 죽을 흉내 내서 끓여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있는 재료를 넣고 창작을 해서 먹기도 하지만 그중에 좋아하는 죽은 김치죽이다. 김칫국에 밥을 말아놓고 시간을 꽤 흘려보낸 모양새이기도 하지만 신김치를 쫑쫑 썰어 넣어 약한 불에 푹 끓여서 먹는,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끈한 김치죽은 한겨울에 어울리는 음식이다.

 사실, 어린 시절에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지만 어떤 책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책에서 주인공이 그렇게나 김치죽을 끓여먹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sns에 올리는 사진처럼 그런 음식으로 적어 내려간 것이 아닌, 소박하다 못해 가진 것에서 끓여내 먹었던 그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그 김치죽에 대한 느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했다. 그걸 어느 날부턴가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끓여내기 시작한 것이다.



쌀을 불려 김치와 함께 볶다가 육수를 부어준다. 귀찮은 날은 물 붓고 끓인다.



5,6년 전 겨울이었던 거 같다. 은인처럼 생각하는 언니가 있는데 집으로 초대하여 놀러 간 일이 있었다. 보통은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도 혹여나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거 같아서 음식은 포장해서 먹거나 배달해 먹자고 신신당부하는 편인데 언니가 밥을 해주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하는 언니의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염치가 없으면서도 기쁜 일이라 신이 나서 갔다. 누군가를 초대하여 상을 차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거창한 느낌의 '요리'를 떠올리겠지만 언니의 밥상은 달랐다.

 도착했을 때는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서 김이 피어올라 집이 촉촉하고 따듯했고 된장국이 끓는 냄새가 푸근했다. 고기를 막 삶아 두툼하게 썰어내고 있었는데 그 가느다란 손으로 음식 솜씨는 큰엄마 같은 언니의 뒷모습이 좋았다. 거실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내 앞으로 언니가 작지 않은 밥상에 밥을 한가득 퍼 담고 포기김치를 수북하게 쌓은 그릇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봄동 겉절이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지금도 봄동만 보면 그날의 겉절이가 생각나고 달고 달았던 된장국 맛이 지금도 혀끝에 남아서 떠올리면 입에 침이 돈다. 많이 먹고 더 먹으라는 그 밥상은 한 번씩 마음에 허기가 지는 날에 생각한다. 된장국과 봄동 겉절이, 화려하지 않았던 그 밥상은 타인에게 선물 받은 최고의 밥상이었다.



음식을 담아내는 모양새를 보면 그 사람 마음이 보인다. 따라갈 수 없는 포근하고 넉넉한 언니의 밥상.



아침이면 남편 도시락을 싸고 외식은 별로 하지 않는 우리 집 밥상은 아마 다른 집 밥상보다 좀 더 단출할 거라 생각한다. 찌개든 뭐든 포함하여 상에 올리는 반찬은 세가지를 넘지 않는다. 먹을 만큼만 음식을 해서 다음 끼니에 이어서 먹는 일은 없게 하는 밥상은 가끔은 너무 소박한 게 아닌가 싶어서 미안해지기도 한다.

 가격이 만만한 식재료를 좋아하는 편이라 콩나물을 자주 이용하는데 콩나물을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고 들기름에 볶는 이름 없는 반찬을 종종 한다. 다양한 음식을 꽤나 하는데도 남편은 이 콩나물 볶음을 먹을 때면 가장 잘하는 음식이라고 표현한다. 닭볶음탕이나 해물탕 같은 제법 '요리'같은 음식을 넘어서는 콩나물 볶음이라니. 대체 왜 가장 잘하는 음식이라고 표현하는지 의아해지긴 하지만, 엊그제 뜬금없이 밥상 앞에서 " 늘 따뜻한 밥 고생하며 해줘서 고맙지." 라며 밥을 떠 넣는 남편을 보니 언니의 봄동 겉절이처럼 남편의 기억 음식은 콩나물 볶음이구나 싶었다.



잔잔하게 끓여내는 죽이 좋다. 훠이훠이 숟가락을 저어 본다.



우리는 사진을 찍지 않는, 그저 그런 날의 밥상을 더 많이 마주한다. 화려하지 않고, 딱히 자랑스럽지 않은 밥상 말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어린날의 엄마의 밥상이나, 손주사위 인사오던 날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투박한 닭백숙, 남편과 둘이 마주 앉아 냄비째 놓고 먹었던 김치볶음밥이 마음속에는 더 깊고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부러워하진 않겠지만 누구나 그리워하는 밥상에 대한 기억이 더 깊고 진하게 자리 잡길 바란다.



그리고 따뜻한 2020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길 바란다.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콩나물김치죽을 끓여보자.



재료

콩나물 40g( 약 한 줌)

쌀 100g( 2/3컵)

김치 140g

김치 국물 60ml

참기름

소금


육수

다시마 작은 조각 2장

국물용 멸치 5~7마리




1. 내장 제거한 멸치와 다시마는 마른 팬에 살짝 볶아준다.

2. 콩나물은 꼬리를 제거해준다. (그냥 넣어도 되지만 짧은 편이 먹기에 편하다.)

3. 제거한 꼬리와 멸치 다시마에 물 1.2L를 넣어 끓여 육수를 준비한다.(육수는 생략해도 된다.)

4. 쌀은 충분히 불려준다. (평균 30~50분 불려준다. 쌀이 반투명에서 하얀 상태로 변한다.)

5. 속을 털어낸 김치는 잘게 썰어준다.

6. 참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김치를 볶아준다.

7. 김치의 물기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불린 쌀을 넣고 볶아준다. (불은 중약불)

8. 육수를 붓고 김치 국물도 부어 끓여준다.

9. 쌀알이 푹 퍼질 때까지 끓이다가 콩나물을 넣고 숨이 죽을 때 불을 꺼준다.

10.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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