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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의 경쟁자들

파치가의 음모

by 넙죽

더 웅장하고 크게, 피티 궁전


피렌체에 메디치 가문에 대적할 자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디치 가문에 도전하던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 당시 피렌체의 정치체제는 엄연히 공화국이었기에 메디치 가문이 마치 군주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혹자는 메디치 가문이 가진 권력보다 그 가문이 가진 재물이나 위세를 더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코시모 메디치 시대의 루카 피티는 후자에 더 가까운 쪽이었을 것이다.


루카 피티는 정치적으로는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와 대립하기보다는 오히려 협력 관계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디치 가문에 대한 경쟁심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루카 피티 또한 은행가였고 정치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수완가였기 때문에 코시모 메디치에 비해 크게 뒤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피티_피티요.jpg 아르노 강 건너의 피티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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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롭게도 그가 메디치 가문에 대한 승부욕을 드러낸 것은 정치나 경제적인 분야가 아닌 건축 분야였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가문을 위해 짓는 궁전의 건축이었다. 루카 피티는 자신의 가문의 이름을 딴 피티 궁전을 짓는 데에 열을 올리면서 메디치 궁전보다 무조건 웅장하고 아름답게 짓기를 원했다. 코시모 메디치가 피렌체 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만큼 메디치 궁전이 지나치게 화려할까 봐 걱정했다면 피티는 무조건 메디치 가문보다 크고 화려한 궁전을 원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루카 피티가 이미 코시모 메디치 보다 사려 깊은 사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루카 피티가 무언가 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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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티 궁전이 완성된 이후에도 그 승패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피티 궁전은 크고 웅장하기는 하지만 메디치 가의 궁전보다 크게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또한 재밌는 사실은 루카 피티는 피티 궁전에 들어갈 건축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였고 결국 이 궁전은 루카 피티의 후손에 의하여 메디치 가문에 양도되고 만다는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대를 끊기 위해! 파치 가의 음모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자, 로렌초 메디치가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 되었을 무렵, 피렌체에서의 메디치 가문의 독주를 막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바로 파치 가의 음모였다. 파치 가문은 메디치 가문과 마찬가지로 은행업에 종사하던 가문이었고 메디치 가문 못지않게 피렌체에서 명망 높은 가문이었다. 그리고 메디치 가문이 권력독점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파치 가문의 시도는 다분히 정치적이었고 음흉했으며 위험했다. 음모를 꾸미는 자들의 뒤에는 유럽 최고의 권위를 가진 교황 식스토 4세가 있었고 이들이 실패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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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음모는 바로 메디치 가문의 두 젊은이인 로렌초와 줄리아노 형제 모두를 암살하는 것이었다. 이 두 형제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메디치 가문은 재기할 수 있고 암살자들의 신변 또한 보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메디치 가문의 대를 끊기 위해서 두 형제 모두를 죽여야만 했다.


이들의 거사는 피렌체의 대성당인 두오모에서 미사 중에 이루어졌고 실행자는 파치 가의 프렌체스코로 정해졌다. 메디치 가문의 두 형제 중 먼저 동생 줄리아노 쪽이 그들의 첫 희생자가 되었고 이제 다음 희생자인 로렌초의 목만 차지하면 그들의 거사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로렌초 메디치는 부상만 입은 채 황급히 몸을 피했고 파치 가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로렌초 메디치는 암살자들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고 파치 가문의 프란체스코 또한 체포되어 베키오 궁전에서 목이 매달렸다. 살아남은 파치 가문의 일원들의 운명도 그렇게 밝지만은 못했다. 대부분이 피렌체에서 추방당해야만 했고 피렌체에서 파치 가의 이름이 불리는 것도 그 가문이 흔적이 남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가문 자체가 피렌체에서 사회적으로 말살당한 셈이다.


파치예배당.jpg 파치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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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치가_문장.jpg 파치가의 문장


피렌체에서 파치 가문이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장소들이 남아있기는 하다. 그 장소들 중 한 곳이 바로 파치 예배당이다. 파치 예배당은 산타 크로체 성당 안쪽에 위치한 건물로 산타 크로체 성당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피렌체 두오모의 돔을 완성한 브루넬레스키가 이 예배당을 설계했다고 전해지는데 그 때문인지 파치 가문의 흔적이 거의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 같다. 파치 가의 음모라는, 피렌체 희대의 피비린 내 나는 암살 사건을 벌인 가문과 관련된 곳이지만 예배당 건물 자체는 매우 경건하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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