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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시절의 종말

피렌체 르네상스의 종언

by 넙죽

신의 이름을 빌린 독재, 사보나롤라


로렌초 메디치 사후 메디치 가문과 피렌체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못했다. 로렌초 메디치의 아들인 피에로 메디치는 아버지의 정치수완을 물려받지 못했고 너무도 무력하게 권력에서 밀려났다. 그 권력의 공백을 채운 것이 바로 사보나롤라였다.


당시 피렌체는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등 외세의 침입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고 시민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 사보나롤라는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는데 피렌체가 현재의 위기에 빠진 것은 메디치 가문의 부패와 방종 때문이며 피렌체가 다시 신앙의 길로 돌아가야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사보나롤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피렌체의 거리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설교했고 금세 시민들의 인기를 얻어 피렌체의 새로운 권력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불안감에 휩싸일수록 의지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기 마련이고 사보나롤라는 그 틈새를 잘 겨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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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_궁전_내부.jpg 베키오 궁전 내부


하지만 사보나롤라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매우 변덕스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보나롤라의 종교적 신앙은 현실적인 모든 문제를 극복해주지 못했고 또한 그는 반대파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정치적 수완이 부족했다. 결국 사보나롤라는 그를 권력자로 만들어 준 시민들에 손에 의해서 그 자리에서 끌려내려왔고, 자신이 시민들에게 설교하던 시뇨리아 광장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인 화형에 처해지면서 그의 시대를 마쳤다.


메디치 가문의 영광의 시대도 끝이 나고


로렌초 메디치 이후 가문의 형세가 기울었어도 메디치 가문이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문가라는 사실은 한동안 변하지 않았다. 로렌초 메디치의 아들과 조카 모두 교황이 되어 가문의 이름을 드높였고 뒤이은 자손 들 중에서는 프랑스 왕가의 왕비도 배출했다.


잠시 수도승 사보나롤라에게 밀려 피렌체를 떠나있기는 했지만 사보나롤라가 시민들에 손에 처형당한 후 다시 피렌체로 복귀하여 권력을 잡기도 했다. 그리고 메디치 가문은 더 이상 변덕스러운 피렌체 시민들의 손에 자신들의 운명을 맡기지 않기 위해서 피렌체를 공화국이 아닌 대공작 한 명이 다스리는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만들고 자신들이 대공작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때를 피렌체의 황금기가 끝난 시대라고 생각한다.


코시모_1세.jpg 토스카나의 1대 대공 코시모 메디치


토스카나의 대공이 된 메디치 가문의 운명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가문의 직계 혈통들이 끊어지게 된 것이다. 토스카나 공국의 운명도 메디치 가문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메디치 가문이 혈통이 끊어지고 난 뒤 이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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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명문가의 자부심과 품격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 메디치는 자신이 상속받은 메디치 가문의 예술품들을 토스카나 정부에 기증했고 그 예술품들이 현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기반이 되었다. 메디치 가문은 정말 피렌체를 사랑했었나 보다.

님아, 부디 그 그림을 밟지 마오


피렌체에서 가장 사람들로 붐비는 곳은 단연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즉 두오모가 있는 주변 광장이다. 그러나 이 곳에는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이들을 노리는 사기꾼들도 존재한다. 특히나 이들이 수법 중 하나로 유명한 것이 바닥에 그림을 깔아두는 것이다. 마치 판매하는 것처럼 그림을 바닥에 깔아두는데 사실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기 보다는 그림을 출력한 종이에 가깝다. 그리고 전혀 그 그림을 판매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주 수입원은 바로 어수룩한 관광객들이 두오모의 광경에 두 눈을 사로잡힌 사이 무심코 그림을 밟도록 유도하고 그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여 돈을 버는 것이었다.


이들의 수법을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나도 그들의 수법에 당할 뻔 했기 때문이다. 두오모의 사진을 잘 찍기 위하여 이곳 저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다가 누군가에 발에 걸려 무심코 넘어지게 되었는데 양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잡아주는 것이었다. 사실 이 때 그림을 밟지는 않았다. 그림을 밟지 않았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가던 길을 가며 광장을 빠져나가는데 갑자기 두 명의 사내가 뒤에서 나를 잡는 것이었다. 내가 밟은 그림도 아니고 뜬금 없는 그림을 내 얼굴에 들이대면서 그림을 밟았으니 50유로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말도 안되는 가격에 화도 났지만 문제는 나의 족적도 아닌 전혀 생판 모르는 발자국을 가지고 우기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때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그림에 찍힌 발자국은 누가봐도 구두 발자국이었다. 내가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자 그들은 그러면 네가 생각하는 가격을 말해보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협상을 이어가려고 했다. 내가 순순히 응하지 않자 나의 팔을 꼬집고 심지어 같이 있던 아내에게까지 위협을 가하는 것을 보고 매우 화가 나서 그들과 한바탕을 하려고 했으나 아내가 침착하게 나를 진정시켰다. 우선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의 주의가 산만한 틈을 타 빠르게 달려 사람들이 많은 피렌체의 중앙역인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으로 피했다. 혹시나 계속 쫒아올까봐 두근 두근하면서 말이다. 다행히도 그들은 우리를 포기한 모양인지 더는 쫒아오지 않았는데 혹시나 그들을 마주칠까 두려워 피렌체에 있는 동안 되도록 두오모 광장으로 가는 동선은 피했다. 물론 숙소에 돌아온 후 아내에게 혼이 났다.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유럽에서 관광에만 정신에 팔려있으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고 아내의 화도 금방 풀어졌는데 지금은 가끔 생각 날 때면 오히려 그 일을 가지고 나를 짓궃게 놀린다. 어딜 가나 또 그림을 밟을 지 모르니 발 밑을 조심하라고. 사실 조금 억울한 것은 그들이 건 발에 걸려 넘어진 것 밖에 없다. 확실히 그림은 안밟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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