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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꽃 피우고

르네상스는 왜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는가

by 넙죽

르네상스의 신호탄, 피렌체의 두오모


르네상스란 인문주의의 부활을 상징한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인간의 대한 사유와 탐구에서 비롯한 학문과 예술이 발달하였으나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발생한 안보의 위협, 경제적 쇠퇴 등으로 인하여 학문과 예술은 꽃피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의 꽃이 다시금 피어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유럽에서는 다시금 문화와 예술이 꽃피우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곳이 아닌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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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피렌체는 상공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였다. 특히 가죽 가공, 금융업 등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아르노 강 위에 세워진 베키오 다리 위에는 현재 수많은 금은방들이 입점해 있는데 과거에는 푸줏간이나 가죽 처리장들이 늘어서 있던 곳이라고 한다. 당시에 피렌체의 가죽 가공업은 꽤나 번성했는데 그 때문에 수많은 푸줏간과 가죽 처리장에서 나온 핏물들과 악취로 시민들이 고통을 겪자 당시 피렌체 당국에서는 이들을 베키오 다리에서 쫓아내었고 그들의 빈자리를 금은세공업자들이 채운 것이란다.


피렌체의 발달된 상공업 때문인지 이 도시에는 부유한 사람들로 넘쳐났고 도시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되게 되었다. 또한 피렌체의 외교술은 이탈리아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훌륭해서 도시는 항상 안전했다. 개인적으로 문화와 예술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그 활동을 지원해줄 자본과 자유로운 사고 활동이 가능할 만큼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회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간은 자신의 신변이 위태로울 때 사고가 굳어지고 매우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문화의 예술의 발달에는 안보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피렌체는 르네상스 발상지로서의 조건을 잘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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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는 르네상스의 상징과 같은 건물이 그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다. 바로 피렌체의 두오모,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우리말로는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정도로 해석된다. 한국사람들은 통상 두오모 하면 이 곳 피렌체의 두오모만을 생각하지만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서 해당 교구의 주교가 기거하는 주교좌성당을 의미하기 때문에 피렌체의 두오모만이 유일한 두오모는 아닌 셈이다.


피렌체의 두오모가 르네상스의 상징인 이유는 바로 두오모의 돔 때문이다. 돔 양식의 건축물은 사실 로마 제국 시절의 건축 양식이다. 로마가 자랑한 건축기술인 아치 기술을 접목시켜 만든, 다시 말해 당시 건축기술의 절정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라져 버렸는데, 그 기술을 다시 부활시켜 처음 도입한 곳이 피렌체의 두오모였다. 그리고 피렌체 두오모의 돔을 설계한 사람이 그 유명한 브루넬레스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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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오반니.jpg 산 지오반니 세례당
기베르트_황금문.jpg 기베르티가 만든 황금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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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레스키는 본래 금속 공예가 주된 업이었던 사람으로, 앞서 두오모 광장에 있는 산 지오반니 세례당의 문의 장식을 두고 기베르티라는 인물과 경쟁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승부는 기베르티의 승리로 끝났고 산 지오반니 세례당의 문을 꾸미는 것은 그의 몫이 되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패한 브루넬레스키는 패배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산 지오반니 세례 당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바로 피렌체의 염원인 두오모 성당의 돔을 자신이 완성하는 것.


그는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갔다. 오로지 로마시대의 돔 기술을 부활시키기 위해 로마의 판테온을 몇 년 동안이나 찾아가서 관찰했다고 한다. 인문학의 절정이라고 여겨진 로마 시대의 잃어버린 기술을 복원시킨 브루넬레스키. 그리고 그의 설계를 현실로 가능하게 한 피렌체의 부와 자유로운 분위기. 그 두 가지가 어우러져 피렌체에서 로마시대의 돔이 부활하게 되었고 그 '돔의 부활'은 르네상스의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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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자들이여 모두 피렌체로 오라!


피렌체에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외에도 중요한 성당이 하나 더 있다. 산타 크로체 성당이다.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마찬가지로 순백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성당이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외관 때문만은 아니다. 산타 크로체 성당 건물 자체보다 이 성당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더 이 성당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성당 안에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던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이 잠들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이 있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나 볼 법한 인물들이 모두 피렌체의 한 성당에서 잠들어 있는 이유가 매우 놀라웠다. 이토록 재능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두 피렌체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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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재들이 피렌체에 몰린 이유는 바로 메디치 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메디치 가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명문가로 금융업으로 쌓은 부를 기반으로 피렌체의 예술가, 학자 등을 후원했다. 메디치가의 후원에 대한 소문을 들은 인재들은 앞다투어 피렌체로 몰려들었고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피렌체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켈란젤로.jpg 미켈란젤로의 묘
갈릴레이.jpg 갈릴레오 갈릴레이요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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