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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아래 밀라노

이탈리아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

by 넙죽

이탈리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마지막으로 닿는 도시, 밀라노.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할 때면 보통 로마나 밀라노를 통해 이탈리아로 들어오거나 한국으로 나가는 계획을 짜기 마련이다.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스위스 등 다른 유럽 국가로 이동할 때에도 밀라노는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는 교통의 중심지인 셈이다. 때문에 밀라노는 많은 여행자들이 오가는 곳이지만 의외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떨어지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밀란.jpg 밀라노가 가진 현대적인 이미지와 잘 맞는 도시 풍경


밀라노는 이탈리아 안에서 꽤나 도회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꽤나 멀어져 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에서 바라는 것은 현대적인 느낌이 아니라 고대의 유적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 등 낭만적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밀라노는 낭만적인 이탈리아의 느낌보다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현대 도시 느낌이 강하게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밀라노를 그저 스쳐가는 경유지 정도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밀라노 또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번성했던 도시국가였으며 그만큼 그 안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밀라노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서 떠나보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신에게 닿기를!


이탈리아의 도시들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바로 대성당이다.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방문하면 그 도시의 중심이 되는 광장 한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도시의 대성당이다. 광장의 이름도 그 성당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다분히 종교적이다. 시민들에게 매시 정각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도 시계탑의 큼지막한 시곗바늘이나 전광판이 아닌 성당의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맑은 종소리이다. 이탈리아를 잠시 여행할 뿐이었던 나도 며칠 지나자 자연스럽게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로 시간을 가늠하게 되더라. 일반적인 현대인의 삶에서 종교는 점점 그 비중이 옅여지고 있지만 이탈리아인들에게만큼은 종교 특히 가톨릭은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있는 것 같다.



밀라노 두오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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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도 도시의 중심에 대성당이 있는데 그 규모가 꽤 웅장하다. 그리고 상당히 화려하다. 성당이 새하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맑은 날이면 새파란 하늘과 눈부신 흰 빛깔의 성당이 어우러진 장관을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밀라노 대성당인 두오모를 마주하고서는 마치 인간이 만든 알프스 봉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밀라노가 알프스 산맥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알프스가 신이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빚은 걸작이라면 밀라노의 대성당은 인간이 만들어 낸 예술품이다.


내부부.jpg 밀라노 두오모의 내부


밀라노의 대성당을 유심히 보면 그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보아 온 성당들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탈리아 각 도시의 대성당은 그 도시의 역사적 배경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 문화의 부활을 알렸던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 피었던 피렌체와 로마의 경우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성 베드로 성당과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동방무역으로 번성했던 베네치아에서는 그들과 교류가 잦았던 비잔틴 제국의 양식을 본뜬 비잔틴 양식의 산 마르코 성당이 지어졌다. 밀라노는 알프스 이북의 프랑스나 독일, 오스트리아 등 국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지어졌다. 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탈리아 땅에서 고딕 양식은 이민족인 게르만인들의 건축양식이라고 여겨져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밀라노 대성당이 고딕 양식을 채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고딕'이라는 말 자체가 게르만 족의 일족인 고트족의 것이라는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밀라노인의 성향이 이탈리아인들 보다는 알프스 이북의 유럽 국가 사람들의 것에 더 가깝다는 의미일까.


나빌리오_운하.jpg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잔작가님이 가보는 것을 추천한 나빌리오 운하


사실 피렌체의 경우에는 대성당을 완성하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과 메디치 가문의 노력과 기원이 깃들어졌다는 것이 익히 알려져 있으나 밀라노의 대성당 또한 지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건축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성당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신도들의 헌금과 오랜 시간의 건축기간이 필요한 것인데, 밀라노의 대성당이 지어질 시기에는 오죽했을 것인가. 특히 아무리 이탈리아가 대리석으로 유명하다고는 하나 대리석 산지에서 대성당 건축현장까지 운반하는 것은 매우 큰 일이었다. 밀라노인들은 대성당을 장식할 대리석을 나르기 위해서 나빌리오 운하까지 만들 정도로 대성당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밀라노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성당의 공사는 착공부터 완공까지 수백년의 시간이 걸릴 만큼의 대공사였다.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그 손자의 손자로. 몇 세대가 거쳤을지도 모르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밀라노의 대성당은 완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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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성당 완공에 매달리게 하였는가. 그 해답은 성당을 장식한 수많은 첨탑들에서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늘로 높이 솟은 첨탑들은 고딕 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유독 유럽의 다른 고딕 성당 보다도 더 높게, 하늘에 가까이 솟은 느낌이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하늘에 있는 신에게 가까이 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밀라노 대성당의 테라스에 올라 높게 솟은 첨탑들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밀라노인들의 마음은 신을 향해 뻗어나갔지만 나의 마음은 현재 어디로 향해 있는가. 나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삶의 물질적인 측면은 그때보다 더 나아졌지만 가치관은 더 복잡해지고 무엇을 삶의 지표로 삼을 것인가는 더 어려워졌다. 나는 일생을 어떠한 가치를 위해서 올곧게 뻣어나가야 하는가. 더 늦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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