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이지만 방공호이기도 합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역들은 매우 깊은 곳에 있다. 냉전시절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인데 폭격기들의 공습이 만연했던 2차세계대전의 악몽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하철역이 방공호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문에 모스크바에서 지하철을 타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야한다. 경사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누가 나쁜 마음을 먹고 밀기라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크게 다칠정도이다. 때문에 처음에는 매우 공포스러운 공간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 승강장쪽으로 이동하면 궁전의 내부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화려한 공간이 나온다. 지상의 궁전이 차르와 귀족들의 공간이라면 이곳 지하궁전은 이곳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궁전인 셈이다.
지하철 승강장들은 보통 동상이나 조각상 때때로 모자이크나 타일 등으로 장식된다. 샹들리에들이 곁들여지기도 하고. 지하철역 별로 컨셉이 다르기 때문에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때문에 지하철 역의 내부 모습을 보고 내가 어느 역에 와있구나를 추측하기도 하고. 지하철역을 단순히 스쳐가는 공간이 아니라 각 역별로 기억되는 특징 때문에 마음에 담아둘 수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차를 운전하기 부담스러워 자동차를 사지 않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그덕분에 조금이라도 많은 역들을 아니 지하궁전을 만나게 된 장점이 있었다. 시내의 지리에 대해서도 익숙하게 되었고 말이다. 특히 굼백화점이나 붉은 광장을 갈 때 많이 거쳐갔던 혁명광장역, 이즈마일로보 가던 길의 파르티잔스카야 역 등 몇군데 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스크바를 떠난 이후에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는 공간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