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손을 잡고
사람에게도 여러 모습이 있듯이, 도시의 모습도 계절마다 또는 매순간마다 바뀐다. 모스크바에서의 여행이 아닌 삶을 겪고 있는 우리는 감사하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모스크바 모습을 느낄 여유가 있었다.
이곳에 정착하여 마주한 수많은 모스크바의 모습 가운데 밤의 모습이 없어, 아쉬웠는데 다행히 또 좋은 기회를 만나 밤 나들이에 나서게 되었다.
모스크바에 온 지 9개월 차가 되는 시점이었지만 야경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평소 밤이 깊어지기 전에 귀가하는, 매우 강한 귀소본능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밤 공기가 어느덧 스산한 계절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았다.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싸며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가을 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야경을 보려면 무릇 모스크바의 중심부로 가야 한다. 모스크바의 중심부는 명실상부 붉은 광장 부근이다. 붉은 광장의 건축물들이 밤이 되니 색다른 빛깔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낮과 마찬가지의 붉은 빛이지만 조명과 어우러진 색다른 붉은 빛이다. 전자는 자연광의 풍경, 후자는 인공광의 야경.
붉은 광장을 나오면 마네쥐 광장을 만난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좋은 호텔로 여겨지는 포시즌스 호텔과 그 뒤로 러시아의 국회 격인 두마 건물이 보인다. 큼직한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역시 다른 유럽지역의 건축과는 다른, 상남자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러시아에 온 기분을 느끼기에 아주 좋은 야경 스팟이다.
아내의 손을 잡고 호젓하게 걸으며 가을의 분위기를 즐기다가 둘이 약속이라도 한듯이 손을 떼고 각자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에 집중한다. 전에는 사진에 집중하는 나에게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는 아내였으나 본인도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이제는 잘 나온 한두개를 가져다 쓰기도 한다. 아내의 사진 솜씨도 많이 늘어 이제는 나도 가끔 사진을 꾸어다 쓰는 처지가 되었다. '함께 또 같이'라는 원칙은 우리 사이에 변함 없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