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중국을 만나다
대만의 거리나 가게 이름에 유독 많이 쓰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민족, 민권, 민생 등의 단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좋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임에는 분명하나 일상생활에서까지 사용하는 단어는 아닌데 대만에서 유독 많이 쓰이는 이유는 아마도 손문의 삼민주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현재 대만의 정통성은 중국의 국민당에서부터 이어지는데 현재 국민당을 있게 한 사람이 바로 손문이다. 손문은 신해혁명을 통하여 청나라의 전근대적인 통치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중국에 도입하려 했던 사람이다. 손문의 혁명은 성공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는 데에 일조하게 되나 이후 실질적인 통치기술이나 권력기반은 미약하여 각 지역들에게 군벌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장개석 대에 이르러서는 중국 공산당에게 패해 대만에 한정하여서만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서 정부를 꾸리면서 중국 본토에서 대규모로 중국인들이 대만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이때 이주한 중국인들을 외성인, 그 이전에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을 본성인으로 구별해 부르기도 한다. 이전에는 대만과 인접한 지역에서만 이주가 이루어졌다면 이 시기에는 중국 전역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부터 대만에는 중국 본토의 색채가 강하게 채워진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근거지를 옮기면 중국 본토의 진귀한 보물들도 함께 대만으로 옮겨오게 되는데 타이베이의 고궁박물관에 가면 중국 수천년 역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대만 내에서는 중국 국민당과 관련된 명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부기념관과 중정기념당이다. 국부기념관은 대만에서 국부로 여겨지는 손문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고 중정기념당은 장개석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국부기념관은 대만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빛 기와가 인상적인 건물이다. 주변의 조경이 잘되어 있어 공원 역할도 겸하고 있다. 국부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손문의 동상이 큼지마하게 자리하고 있고 동상 주변으로 위병들이 엄숙하게 지키고 서있다. 국부기념관의 내부는 손문의 일대기와 관련된 유물들도 전시하고 있어 간략하게나마 손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중정기념당은 파란 기와와 눈처럼 흰 하얀 외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물이다. 마치 잘 빚어놓은 청화백자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수없이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단 위에 서있는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건물이라니. 그 규모와 화려함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이 중정기념당에 비하면 앞서 본 국부기념관은 소박해보이기까지 한다. 앞서 설명한 손문이 현재 대만의 이념적 아버지라면 중정기념당의 주인 장개석은 실질적으로 현재의 대만을 있게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 인물을 기리기 위한 건물로는 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중정기념당은 장개석 한사람을 기리기 위한 목적을 넘어서 이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을 통하여 체제의 안정성을 대내외에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 중세시대의 고딕 성당이 더 높고 더 크게 만들어진 시기도 가톨릭의 전성기가 아니라 가톨릭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였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인간이란 시각적 자극에 취약하여 보이는 것 그대로를 믿어버리니까 말이다. 중정기념당 안을 들어서자 국부기념관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동상이 나를 맞이한다. 실제로는 공과 과가 많은 인물이긴 하지만 동상으로 남겨진 장개석의 얼굴은 약간의 미소까지 담겨있어 자애로운 지도자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중정기념당에 앉아있는 장개석은 현재의 대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본다.
국부기념관과 중정기념당 같은 웅장한 축조물들이 대만, 자유중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 대만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대만인 스스로는 중국의 정통성이 대만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동아시아의 패자로 도약한 중국의 압박 속에서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독립국가의 지위도 유지하기 버거워보인다. 실제로 그 국력의 차이가 어마하게 벌어진 터라 대만 단독으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계속 중국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위험해졌다. 그러나 식민통치를 했던 일본 보다도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강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으로는 홍콩의 전례를 따라 중국의 일부가 되는 것도 요원하다. 현실을 순응하고 강자에게 승복할 것이냐. 아니면 외롭고 고단한 길이라도 자유 중국으로서의 길을 유지해나갈 것이냐. 대만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의 깊게 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