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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죽의 홍콩 여행- 홍콩 5-3

홍콩의 정신문화가 담겨있는 섬, 란터우 섬

by 넙죽

홍콩의 정신문화가 담겨있는 섬, 란터우 섬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북적거리지만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한 섬이 있다. 홍콩섬만큼이나 큰 란터우섬은 페리나 지하철인 MTR로도 갈 수 있다. 이 섬의 명물은 거대한 청동불상이다. 신앙의 크기가 불상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홍콩에서 불교가 가진 위상이 어떠한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구도하는 마음으로 올라가야 한다. 깨달음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알려주려 함인지도 모른다. 계단을 다 오르자 거대한 불상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불상의 주위로 다른 동상들이 공양을 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사실 불교는 인도에서 기원했지만 아시아 전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 전파된 대승불교는 동아시아의 역사나 동아시아인들의 가치관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인도의 불경을 구하러 가기 위하여 동아시아인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는 서유기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교통과 치안이 요즘 같지 않은 당시로서는 목숨을 걸고 가야하는 길이었다. 어렵게 전파된 불교는 대승불교로 발전하였고 동아시아지역의 고대왕조들의 통치이념으로서 작용하여 중앙집권화에 기여한다. 특히 전생의 잘못이나 공덕에 따라 현생의 삶이 결정된다는 업설은 각국의 신분제도 및 현재 왕조의 통치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자신이 현재 미천한 신분인 것은 자신의 잘못이며 국왕이 국왕인 것은 전생의 많은 공덕을 쌓았기 때문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던 탓이다.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또다른 특징은 개인의 성불보다는 중생의 구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때문에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었으나 고통받는 중생들의 구제를 위해서, 자비를 베풀기 위해 현생에 남아있는 보살이라는 특이한 존재도 있다. 대승불교에서 자비라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까닭에 우리는 홍콩에서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은, 자비로운 미소 가득한 대불을 만날 수 있다.

부처를 만나러 가는 길을 멀고도 험난하다

대불상을 근처에 홍콩 불교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지혜의 길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금강경의 말씀을 새긴 나무 기둥들이 무한대 모양으로 세워져있었다. 각 나무 기둥에 새겨진 문구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부증불감, 색즉시공 공즉시색 등의 간단한 문구는 이해할 수 있었다. 불경의 문구를 커다란 나무기둥에 굳이 새겨 세운 까닭은 오가는 여행자들의 마음에 삶의 평화와 지혜를 심어주기 위한 배려라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마음의 번민이 있었더라도 이 길을 돌고나면 모두 털어버리라는 배려. 이 길을 돌고 난 후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물론 지혜로워졌다라고는 자신하진 못하겠다.

이 길을 얼마나 걸으면 나도 지혜로워질까

사찰음식을 맛보다


인류의 등장 이후 가장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 오히려 소박하고 정갈한 사찰 음식이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나는 란터우 섬에서 홍콩의 사찰음식을 맛보게 되었다. 욕망을 억제하는 승려의 삶에 걸맞는 음식은 어떤 것일까. 모양새는 매우 먹음직스러웠고 맛도 꽤나 괜찮았다. 전반적으로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배어나왔다. 다만 예상했단 대로 고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불가에서 고기를 잘 먹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불교의 계율이 살생을 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살생을 금한 것이지 육식 자체를 금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자신을 위해 도축한 고기가 아니라면 먹어도 된다는 의견들도 종종 제기된다. 초기의 불교의 모습을 보면 불교의 승려는 고기를 먹기도 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수행하는 승려는 대체로 끼니를 주변 사람들이 주는 보시로 이어간다. 보시란 사람들이 승려에게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현생의 덕을 쌓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사람들의 보시에 고기도 포함될 경우도 많기 때문에 승려들도 고기를 먹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보시를 받은 입장에서 이것 저것 가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추측된다. 건강의 측면에서도 특정 식품군의 섭취를 인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 않을까. 홍콩의 사찰 음식을 통해 진리를 찾는 자의 절제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채소만으로도 매우 맛있는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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