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죽의 베네룩스의 여행-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1

상인의 나라, 네덜란드

by 넙죽

뛰어난 상인의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가 세계의 바다를 호령했던 적이 있었던 것을 아는가. 암스테르담은 북해의 여왕처럼 북해지역의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인도네시아 지역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더 놀라운 것은 현재 뉴욕의 이름 또한 본디 뉴암스테르담으로 블린 적이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의 위세는 북미대륙까지 뻗쳐있었다. 무엇이 네덜란드를 이토록 부강하게 만들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자유. 자유를 위해 처절하게 싸우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네덜란드에서는 자유로운 상업활동이 보장되어있었다. 칼뱅교라는 개신교를 믿고 있던 네덜란드는 가톨릭에 지나치게 헌신적이었던 펠리페 2세 즉위 이후 급격히 타 종교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종교가 중요했던 시기였다고는 하나 지나치게 개인의 신앙을 정치에 개입시킨 결과였다. 어떤 시대에서든 개인의 신념을 타인에게 지나치게 강요하면 반발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쫓겨난 유대인들이 그들의 새로운 둥지를 선택하는 데에 매우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유대인들은 매우 뛰어난 경제인이었다. 특히 고리대금업 같은 사금융업이 그들의 주된 장기로 이들의 명성은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유대인들이 금융업에 손을 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은 농업에 종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톨릭을 믿는 유럽에서 이단으로 취급되는 유대교를 믿는 그들이 땅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금융업 및 경제활동에 능한 유대인들까지 이주하면서 네덜란드의 경제활동은 탄력을 받아 한동안 전성기를 누린다. 사실 세계 경제의 흐름은 근대 이후 유대인들의 자본이 어디에 있는 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패권국인 미국을 움직이는 큰 손들 중에서도 유대계들이 상당수 분포되어 있다. 바다의 무역을 제패하던 네덜란드는 이후 영국과의 경쟁에 밀리게 되면서 그들의 전성기는 끝나게 되지만 암스테르담의 해양박물관과 그 옆에 놓인 네덜란드의 대표 상선 플류트선은 그날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다.

많은 화물을 선적할 수 있어 네덜란드 무역 증대에 지대한 공헌을 한 플루트 선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행복은 반드시 일치하는가


국가의 번성하면 개인이 누리는 행복도 당연히 증가한다는 것이 기존의 생각들이었지만 요즘에는 이러한 생각도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국가가 번영한다고 하여 그 이익이 개인에게 고루 쥐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개인의 행복을 구성하는 것이 단순한 경제적인 이익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현대인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이 직립 보행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물론 그 욕망을 추구하고 발현하는 형태는 과거보다는 다양화되고 세련되어졌겠지만. 인간의 가장 큰 욕망 중 하나는 가족과 보내는 행복한 시간들일 것이다. 과연 한창 전성기 때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행복했었을까? 암스테르담을 거닐면서 눈물의 탑이라는 건물을 보게 되었다. 이 건물에 눈물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이 곳이 항해를 떠나는 가장을 배웅하는 가족들이 눈물을 흘린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항해라는 것. 특히, 바다라는 공간은 예측 불가하다. 한번 항해를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아니 돌아올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항해를 다녀오면 가장들은 가족들에게 금화가 가득한 주머니를 안겨주었을지는 몰랐겠지만 과연 그 가족들이 진정으로 바란 것이 금화였을까 아니면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자신들을 사랑해줄 가장의 존재였을까. 아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중에서도 분명 가장보다는 가장이 가져온 금화를 더 사랑하여 거짓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도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눈물의 탑을 보며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행복은 엄연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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