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죽의 러시아 여행-블라디보스토크 4-1

부동항을 찾기 위한 러시아의 모험

by 넙죽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처절한 사투


한국에서 두시간 반정도 비행하면 닿을 수 있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보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과 더 가까운 이 도시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처절한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항구란 세계 각지의 물자들을 받아들이고 또 내보내는 곳이다. 육로의 경우 산이나 절벽, 강 등 이동에 불편을 주는 장애물이 많고 자동차나 기차 같은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온전히 사람이나 가축의 힘만으로 물자를 운반해야 했다. 하지만 바다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육로와 같이 지형이라는 장애물의 방해가 적고 사람이나 가축의 힘이 아닌 부력과 바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배의 크기만 넉넉하다면야 육로보다 훨씬 많은 물자를 적은 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다. 때문에 예로부터 바다와 인접한 국가에서는 해상무역이 선호되어왔다.

한 나라의 항구가 가지는 의미는 이뿐만이 아니다. 항구에는 물자의 왕래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사람의 왕래도 같이 수반한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항구에는 미지의 세계에서 넘어온 선진 문물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항구는 무역선 뿐만 아니라 수많은 군인들을 태워 전세계로 보낼 수 있는 군함의 근거지가 된다. 때문에 전세계 곳곳에 군대를 파견하고 그곳의 물자와 문물을 본국으로 들여와야하는 근대의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항구는 매우 긴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이 긴요한 항구가 겨울에는 얼어버린다는 것이다. 보통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물는 어는 점이 일반 물 보다 더 낮아 겨울철에도 얼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무척이나 길고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은 이러한 상식을 비웃는 것처럼 러시아의 바다를 얼려버렸다. 러시아의 무역선도 군함도 겨울에는 발이 묶이게 되었다. 지금이야 쇄빙선이 있어 겨울에도 항해할 수 있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러시아는 부동항에 대한 강한 갈증을 가지게 되었다.

러시아의 겨울은 바다도 얼려 버린다

러시아는 결국 부동항을 얻게 되었는가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하를 시작하였다. 수도 모스크바와 가까운 바다인 발트해가 있었지만 발트해는 겨울이면 얼어버리기 때문에 부동항을 얻는다는 취지와 맞지 않았다. 때문에 지중해쪽을 노려보았지만 크림전쟁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무산되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가 선택한 곳은 동아시아였다. 청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아이훈 조약, 베이징 조약 등을 체결함으로써 연해주 지역의 영유권을 확보한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한다. 동방을 정복하라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 도시의 이름은 러시아의 동방에 대한 야망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의미했다. 사실 블라디보스토크도 온전한 의미의 부동항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 곳도 겨울이면 얼기 때문이다. 내가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 시기는 3월 중순이었는데 이때도 바다는 얼어 있었다. 사진에는 미처 담지 못했지만 언 바다 위에서 얼음 낚시를 하거나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바다가 단단히 얼었단 이야기일 것이다. 겨울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라면 물 위를 걷는 신묘한 능력이 없어도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 극동지역에서 온전한 부동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러시아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러시아의 팽창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단 영국의 견제와 아시아에서의 패자가 되려던 일본의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중국의 요동이나 한반도의 원산을 얻고자 했으나 모두 좌절되었고 결국 러일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은 일본에게 넘어가게 된다. 결국 러시아의 부동항을 위한 팽창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멈춰진 셈이 되었다.

러시아인의 바다를 향한 열망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놓인 포세이돈의 동상에서 잘 드러난다

러시아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러시아를 아시아로 분류할 것인가 유럽으로 분류할 것인가였다. 사실 러시아처럼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영토를 가진 국가는 매우 드물다. 러시아와 비슷한 사정을 가진 나라는 터키 정도라고나 할까. 터키 또한 영토가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다. 터키는 스스로를 유럽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를 열망하지만 기존 유럽 국가들과의 문화적 유사성이 없어 사실상 가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터키의 상황을 볼 때 지리적인 위치만으로 그 나라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보인다. 따라서 러시아가 어느 곳에 속하는지는 역사와 그 문화를 살펴보아야할 것 같다. 사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도 수도 모스크바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러시아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보다도 수도 모스크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며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과 크게 다른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수도와 멀리 떨어진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그들이 러시아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유럽일까 아시아일까? 역사적으로 보면 러시아 역사의 주무대는 역시 유럽 지역이며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극동지역이 러시아 역사의 무대가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때문에 단순히 아시아 지역과 인접한 영토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러시아를 아시아 국가로 구분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굳이 러시아 아니 블라디보스토크를 정의하자면 아시아와 어깨를 맞댄 유럽 정도라고나 할까.

블라디보스토크의 아르바트 거리
독수리 전망대에서 본 블라디보스토크. 역시나 바다가 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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