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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Dec 25. 2023

10년 된 편의점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나는 늘 후회가 많은 인간이다.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과거지향적 인간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극복하기 어렵다.


 어제 J가 동짓날 집에서 직접 졸인 귀한 팥고명을 나눔 해주었는데, 놀러 온 S와 함께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서 올려먹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배달시키긴 너무 아이스크림 하나니까, 요 앞 편의점에서 사 오지 뭐~" 했다.


 "혹시 큰길 코너에 있는 편의점? 거기 없어졌던데?"


그럴 리가 없었다.

"무슨~ 잘못 봤겠지~"


하고 말았다. 아이스크림 대신, 크래커에 팥을 찍어먹기로 했다.

다 잘 놀고 S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남겨 준 사진.



진짜였다.

진짜로 없어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뭐 집 근처 편의점 없어졌다고 저렇게 호들갑이냐고 할 테지.

근데 정말 사진을 보자마자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편의점은 10년이 넘게 그 자리에 있었다. 같은 건물 1층 김밥집 할머니가 아프셔서 따님이 대신 나와 가게를 정리하며 눈물을 훔치실 때도, 거성부동산 사장님이 신식으로 사무실을 리모델링 하는 동안에도, 네네치킨이 포장마차로 바뀌는 동안도, 옆옆에 무인 가게 ㅇㅇㅅㅋㄹ가 생길 때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켰다.


 아쉬웠던 이유는 단순히 그 편의점이 오래되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편의점의 마스코트, 낮아저씨&밤아저씨를 좋아했다. 파트타임 알바들이 있긴 했지만 크게는 두 분이 2교대로 늘 편의점을 지켰다.


 낮 아저씨는 외향적 성향으로 늘 밝고 씐나게 "안녕하쎄요~"로 특유의 운율을 담아 인사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마음이 말보다 앞서 단어가 서로 겹치면서 말을 더듬게 될 정도로 성격도 몸짓도 재빠른 사람이었다. 야근 후 찌든 얼굴로 온갖 과자들이며 아이스크림, 맥주 등을 정신없이 주워 담는 날이면 "아 요새 바쁘시죠?" 하고 씩씩한 복식호흡으로 늘 말을 던져주는 사람이었다. 별 대화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유효한 위로였다. 보통 편의점에선 눈을 마주치기보단 필요한 물건만 사서 나오는 나도 유독 집 앞 편의점에서는 그와 눈을 맞추고 그가 보던 영상이나 게임 화면에 참견을 하기도 했다.


 밤 아저씨는 내향적 성향으로 속삭이듯 "안녕하세여-" 하고 플랫 하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푸근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새벽엔 주로 발주한 물건이 도착해 정리하느라 물건이 쌓여있는 날이 많았다. 새벽에 갈 때는 대부분 목적이 없고, 어떤 공허함을 채우러 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고르는 시간이 꽤 걸렸다. 항상 내 동선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고, 묵묵히 할 일을 하며 그 넓지도 않은 편의점을 샅샅이 뒤지고 돌아다니는 동안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던 사람이다. 가끔 피카츄 빵을 찾거나 신상 과자나 라면을 물어볼 때도 늘 주문을 넣어주기도 했다. 봉투에 이것저것 담아줄 때면 무게를 균일하게 분배하고, 삼각커피우유의 빨대도 늘 잊지 않고 챙겨주는 꼼꼼한 사람이었다.


 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는 둘의 조합은 서서히 이 편의점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낮에도 밤에도 늘 한결같던 그들이 늘 고마웠다. 모든 것이 바뀌고 나마저 오락가락하는 동안에도 그곳은 늘 거기 있었기에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전조는 많았다. 원래는 없던 매대가 한동안 있었다. 늘 특가나 할인행사를 했었고, 하지만 점점 온라인으로 장을 보게 되면서 갑자기 필요한 재료가 있거나 약을 사는 일, 쓰레기봉투를 사거나 택배를 접수하는 일들로 나의 방문은 늘 "용건이 있는 방문"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나조차도 그랬으니 다른 사람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내 현관 앞으로 지나치게 자주 쿠팡프레시와 컬리, 한살림들이 도착할수록 낮아저씨, 밤아저씨를 만나는 일은 좀 더 드물어졌다. 어쩌면 그게 이유였을 것이다.


 소가 사라진 뒤 외양간 걸쇠를 살펴보는 어리석은 나라는 인간은, 부랴부랴 GS25에 로그인을 하고 뒤늦은 칭찬하기를 남길뿐이다.


늘 고마웠다고. 꼭 전하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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