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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Jan 25. 2024

이 빠진 그릇 삽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상처를 보자

우리 집은 평균 수준의 풍수지리나 미신을 곧잘 믿는 집이었다. 본가에 살던 시절 귀갓길 현관 밖에 흐드러진 굵은소금을 보면 '아부지 또 상갓집 다녀오셨구나.' 했고 신발장에 신발이 나와있으면 혼이 났다. 뭐 문지방을 밟지 않도록 신경쓴다거나 밥그릇을 엎어두지 않는 것들이 기억난다.


 특히 이 빠진 그릇에 밥을 담아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들었다. 손이 작은 나는 항상 내 손 보다 지나치게 큰 고무장갑을 쓰게 되다 보니, 손이 장갑 안에서 헛돌고 둔한 손으로 설거지를 하다 그릇끼리 부딪쳐 흠집이 나면 한숨부터 나왔다. 언젠가부터 고무장갑의 크기가 다양해졌고 그럴 일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지만 그래도 맨손 설거지를 선호하게 되는 이유 중에는 그릇을 놓치는 일에 대한 걱정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버리지 못하고 그저 쌓아 둔 그릇이 벌써 여럿이 되었다.


중국에선 귀한 손님이 오면 굳이 일부러 이 빠진 그릇을 찾아 대접하기도 한다는데(웃긴다), 이렇게나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좋은 집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킨츠기 작가님들은 그릇이 깨지면 인상을 찌푸리기보단, '예쁘게 깨졌다'며 좋아한다고 한다. 수리 후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저 이어 붙인 면면이 금분으로 채워지는 것.


일본은 깨진 그릇을 수리하는 킨츠기(金-금으로 継ぎ-이어 붙이다) 공예가 발달한 문화권이라, 깨진 그릇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판매를 하기도 한다고. 킨츠기는 옻칠로 그릇을 이어 붙이고 그 위에 금분 은분을 뿌려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워낙 나는 깨진 그릇 다수 보유자라 그런 생각은 못했는데, 집에 깨진 그릇이 없어 일부러 그릇을 깼다는 다우의 말을 들으니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문화는 한 번 금이 간 그릇은 이어 붙여도 이미 생겨버린 균열은 돌이킬 수 없다고 여긴다. 헤어지거나 어떤 일로 소원해진 사람을 다시 만나려는 이들에게 관계에 대한 조언을 에둘러 표현할 때도 사용한다. 이런 면에서는 흠집이나 깨진 그릇을 보다 더 아름답게 붙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또 어떤 문화는 되려 관계에 있어 더 관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킨츠기를 실제로 해보면 어떨 땐 산 그릇의 가격보다 고치는 일이 몇 배로 비용과 시간을 쏟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다버리고 새 그릇으로 대체하지 않고 고치는 이유를 물으니 일본의 킨츠기 작가 니카무라 구니오는

그릇에 담긴 이야기를 지울 수 없기 때문에
 

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부러 균열을 드러내고 금분 은분으로 분칠을 해주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일. 회피하며 도망가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상처를 보자. 어디 어디 금이 갔나. 더 정신 차리고 보자. 어떨 땐 기꺼이 깨지고 다시 붙은 상처를 훈장처럼 당당하게 열어 보이는 사람이 더욱 농익고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상처 또한 나의 일부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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