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eK Jan 26. 2024

회사 2호 명함 & 인생 두 번째 명함

모든 동료들은 모두가 스승이자 고객이다.

일을 혼자 하는 거의 2년 동안 모든 스케줄을 혼자 컨트롤하고 진행했다. 말 그대로 원맨쇼. 물론 내 입에 풀칠하며 또 다음 프로젝트를 도모해야 하는 등의 일에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질을 탐구하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갑자기 '아 그 가격엔 (제 마음이) 어렵읍니다... 고갱님'을 정중히 말하는 네고시에이터였다가 '아, 그건 또 언제까지 납부인가요...' 하고 되묻는 빙구초짜 개인 사업자였다가... 우당탕탕 그 자체였다. 그런 대신 노트북만 있으면 그곳이 강원도든, 도심 호텔이든, 집이든 진정한 노마드로 일했다. 마치 내가 IT개발에 도가 튼 해커들의 파라다이스에 있는 듯했다. (실제로 프로젝트 별로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해커 파라다이스"라는 개발자들의 공동체 시스템이 있다. https://www.hackerparadise.org/) 그것이 1인 기업이 가지는 유일한 장점이자 장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AI 관련 응용프로그램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함께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다시 알아버렸다. '망해버리더라도 나 혼자 하고 싶다.'며 모든 걸 혼자 감당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게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또 그 아무 말 대잔치가 오가는 티키타카 속에 실마리의 끝을 잡아내고 그걸 단단하게 지어 올리는 기쁨을 상기했다. 


그 생생한 기억 앞에서도 망설인 이유는 


1 당장 일이 계속 들어오리라는 보장이 없었고

2 당분간 그렇더라도 또 연이어 일이 들어오리라는 보장이 없었고

3 얼마간 그렇더라도 또 지속적으로 일이 들어오리라는 보장이 없었고.... 


보장은 무슨... 보장은 보험 설계사에게나 바랄 일이지, 이 끊임없는 '보장' 타령... 한 줌의 손해도 볼 수 없다는 대단한 이기심과 욕심이 눈앞 시야를 가린다. 결국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나를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갑자기 빙구머저리가 되어 미래를 보고 와야 어떤 결정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객기를 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속절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래서 막연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걸지 않은 채로 새로운 일이 들어와 다시 뭉칠 수 있는 기회만을 노리고 기다리며 수행하는 나날들을 보냈다. 될 듯 매듭지어지지 않는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확정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설레발치며 공유하지 않도록 신중해졌다. 나는 점점 입을 다물고 마침표를 찍지 않고 마음에 쌓이는 문장들이 많아져 갔다.


기회가 닿아 다시 함께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 날, 문득 클라이언트와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나의 동료가 "제가 아직 명함이 없어서..."라고 첫인사를 시작해야 했던 상황들이 기억났다. 


실제로 나는 독립하고도 1년 내내 "제가 아직 명함이 없어서..."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땐 내가 언제고 좋은 기회만 있으면 이직을 할 생각이었고 그건 내 선택이었다. 내가 모든 걸 책임지며 이름을 걸고 어떤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상황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만 나의 동료가 그런 말을 해야 한다면 그건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불찰일 수밖에.


학부 때 이후로 좀처럼 열고 싶지 않았던 어도비 프로그램을 열어 개인정보를 바꿔 발주를 넣고, 후가공을 하면 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없어 레이저 1도 인쇄를 했다. 


그렇게 충무로 인쇄골목에 가, 직접 명함 100부를 찾아 주머니에 넣고 왔다.(사실 난 내 명함도 사무실에 앉아 받아봤지, 이렇게 직접 수령한 적이 없다.) 어쩐지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사진을 찍어 명함 주인에게 보내주었는데 돌아온 문자,


"인생 두 번째 명함이네요! 기분이 또 색다르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단지 명함이라는 기능을 하는 종이뭉치가 필요할 거라고 시작한 일이 서로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저도 더블더블유 2호 명함이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답장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되는대로 일을 꾸려 어찌 되었든 사고 없이 마무리하는 일에 몰두했던 것 같다. 다소 늘 긴장상태에 있었고, 그런 만큼 더 넓고 더 창의적인 생각으로 뻗어나갈 의욕은 잃은 지 오래되었다. 오늘 나눈 그녀와의 긴 화상 회의(인지 수다인지)도 나를 끊임없이 나아가게 한다. 이곳에서 세속적인 셈에 몰두하는 나를 건드려 '그거 아니야, 이걸 더 연구해야지!'라고 얘기해 주는 듯했다. 


나의 독립 후 만나는 모든 동료들은 모두가 스승이자 고객이다. 모든 것에서, 모든 곳에서, 모든 이로부터 배운다. 




작가의 이전글 이 빠진 그릇 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