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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Jul 11. 2023

"너는 멈추고 나는 멈추지 않았을 뿐이야."

7월 단상


 잦은 비소식과 함께 23년의 하반기가 시작되고 있다. 다소 나른하고 한가한 느낌이 드는데 불안보다는 고요에 가깝다. 이 고요한 느낌이 싫지 않다. 꽤 오래 듣지 않았던 짜르 노래가 갑자기 듣고 싶다. 너무 애정하는 밴드. 굿바이 앨범은 버릴 노래가 없다. 자켓도 예쁘다. 그중 최애 두 곡


goodbye https://www.youtube.com/watch?v=hx_C3s2Z-aY


little pink house https://www.youtube.com/watch?v=4XGSEH24Z-Y&list=OLAK5uy_lAvelw8xl6mqo_DOWfQLjhWF_9c2Wxhto&index=6



#비가 와서 오히려 좋아

 빗방울이 창문으로 떨어져 부딪치는 소리가 제법 세차다. 새벽부터 요란하더니 멈출 줄을 모른다. 그 덕에 티도 안나는 집안일을 오래 했다. 명상을 하고 향을 사리고 차를 내려먹고. 통세척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 빨래를 여러 번 돌려 널었다. 신문을 꼼꼼히 읽고 한 장씩 접어 서예 연습지를 만들어뒀다. 먹을 오래도록 갈고 먹향을 맡아본다. 비가 와서 그런지 먹향이 좀 더 진하다. 보이는 모든 먼지를 비워내고 스팀 내어 모두 닦아낸다. 맨발로도 따듯하고 보송한 바닥이 기분이 좋다.



#깡통차를 주는 브랜드 덕에 DIY 진행 중

알리에선 도무지 맘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해서 결국 국내 업체의 바닥 매트를 주문해 받았는데, 2열 원단이 흉하게 잘려있다. 베이지 원단 자체도 붉은 끼가 도는 갈색에 가까웠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블랙 파이핑이 나뉘는 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다. 중간 턱이 없는 전기차라 분명 한 판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그랬을까. 고객 센터에 문의하니 해당 줄무늬 원단 폭이 그렇게 안 나온다고 했다. 그냥 블랙을 시켰어야 하는구나. 괜히 끼를 부렸다.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일이 참 부질이 없다. 맥없이 반품신청을 해놓고 다시 블랙을 주문했다. 같이 가지고 나간 시트 세제를 대충 뿌려 한번 닦아낸다. 아무래도 화이트 시트는 손이 많이 가겠구나. 뭘 어지르는 건 안 할 자신이 있지만 세심하게 관리하는 건 또 내 영역이 아니다. 



#동서횡단홍길동이 하루키가 되어가는 과정

 정오 즈음 드디어 노트북 앞에 앉는다. 간단히 업무를 하고 계약서 같은 것을 세무사에게 보내고 이것저것 회신하고 나니 새삼 알맞은 틀 안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원래 아무렇게나 물건을 두고 속박되어 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어째 점점 규칙이 많아지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준다.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저번주 내가 제일 잘한 일

화선지를 잘라본다. 수업 때 스승님이 쓰시던 칼에 새삼 감탄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만원 짜리 한 장을 내어놓으라고 하시더니 종이칼 한 자루를 주셨다. 만 원짜리로는 살 수도 없을뿐더러 일본에서 어렵게 사 오신 몇 자루 중 하나를 선뜻 주셔서 죄송하고 당황했지만 너무 신이 났다. 허허 웃으면서 뭐든 목마른 자 물을 찾아라 그럼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셨다. 칼을 쓸 때마다 너무 몹시 매우 좋다. 종이가 삭- 하고 깨끗하게 잘려나가는 소리에 귀가 즐겁다. 크고 넓은 마음을 뭘로 보답할지 고민이다. 



#소중각(a.k.a. 소장각)

금은보화 단지 열듯 각 뚜껑을 열어본다. 전시를 준비하는 사이에 각이 두 개나 생겼다. 

일주일 전 홍우당 선배께 받은 나의 각. 마음으로 새겨주셨다. 두 번이나 작업하셨다고 하석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셨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말고 벙글도 해달라고 하라고 농담도 하셨다. '싱글'이라는 한글 호도 생겼다. 싱글벙글 즐거운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거세게 잇사이 발음을 섞어 Single [ ˈsɪŋɡl ]이라 부르면 어딘가 섣부르게 기대지 않고도 홀로 잘 설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호다. +골프도 싱글 치면 좋겠다. :-D



#너는 멈췄고 나는 멈추지 않았을 뿐이야

오늘 글감인 '그림'이라는 단어를 뜯어본다. 그림은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는 단어라고 한다. 동사 '그리-'에 명사 파생 접미사 '-ㅁ'을 결합해 그리는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비유적으로 한 폭의 그림이다.라고 할 때, 현실감이 떨어지는 매우 아름다운 대자연을 만날 때 쓰기도 한다. 어쩐지 '그림, 그림, 그림..' 발음을 하고 있자니 왠지 동심으로 돌아가는 단어라는 느낌이 든다. 류승범이 유퀴즈에 나와 자기 아내와의 대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한국 팬들에게는 신기루 같이 공개된 적 없는 그의 아내의 직업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고 했다. 그녀와는 운명 같다는 러브스토리 이야기를 해주며 그와 아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줬다. 어느 날 아내에게 류승범이 “왜 너는 그림을 그려?”라고 물었고 그 질문에 듣던 그녀는 잠시 미소 짓다가 “어린아이들은 다 그림을 그려. 자기표현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지."


"너는 멈췄고 나는 멈추지 않았을 뿐이야.”

내 맘에도 꽤 와닿는 에피소드였고 그런 대화를 나누는 그 둘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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