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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Jul 19. 2023

이 세상 가장 필요한 발명품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이 세상 가장 필요한 발명품이 뭘까?라는 질문에 단숨에 영화 이터널선샤인을 기억해 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지워주는 기술.

이별이라는 난관을 헤쳐나가는 데에 다소 충격적인 솔루션이다.


 관계의 권태로움에 질리고 질려 이제 그의 기억 따위는 한 줌도 남기지 말고 지워달라고 의뢰한 여자. 기억을 지워 자신을 못알아보는 그녀의 결단과 그 결단을 실행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남자, 남자의 충격은 곧 엄청난 분노로 바뀌고 그에 질세라 나도 역시 지우겠다 다짐한 남자. 하지만 기억이 정말 삭제되려는 그 순간, 조엘은 자신이 지우려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사랑 그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해 지우겠다는 것은 함께 한 모든 시간과 역사가 지워지는 것이다. (도서관 씬에서 도미노가 무너지듯 사라지는 책들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일부를 포함해 도려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의미는 이전에 봤을 땐 미처 느끼지 못했다. 아직도 이 영화를 통해 새롭게 느끼는 게 있다니.

 남자는 자신의 성격 때문에 자신이 느꼈던 아픔을 당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기억은 공유하지 않아 지울 수가 없는 혼자만의 기억이다. 그런 기억들만이 기억의 삭제로부터 비로소 도망칠 곳이 되는, 안전지대의 힘을 가진다. 결국 서로를 위해 홀로 묵묵히 참았던 시간들이, 희생들이, 마음들이 다시금 기회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에게 이터널 선샤인은 '볼 체력'이 필요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아마 이다음은 플레이 자체를 하는데에 더 큰 결심이 필요할 것이다.


 지워지는 기억의 태풍을 피해 두 손을 꼭 잡고 전력을 다해, 서로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내달리는 그와 그녀의 뒷모습을 담은 장면은 너무나 절박하다. 서치라이트 같은 빛이 두 인물을 따라 비추고 그 빛으로부터 어둠으로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클레멘타인의 얼굴, 화면 뒤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장면은 심장이 바닥 없는 암흑으로 쿵- 떨어지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둘 다 서로를 잊을 자신이 없어 센 척하는 허당들일뿐인데.

더욱 진절머리 나게 충격적인 일은 그렇게 말끔하게 리셋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몸부림이 있었는지, 그 노력이 무색하게 다시 서로에게 너무 쉽게 빠진다는 것.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의식적인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무의식의 영역인 피부에, 몸에, 정신에 삶의 방식으로 남아버린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왜 이토록 어리석은가. 결국 유전자와 호르몬의 장난질이라고 뇌과학으로 이미 밝혀지지 않았느냐고 알 만한 사람들이 뭘 의미를 두느냐고 말하고 싶다. 그 답은 아마도 제목에 있었다.


편의상 이터널 선샤인으로 짧게 줄인 버전으로 한국에 개봉했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티끌 없는 마음에 미치는 영원한 빛"이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초상,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실화다

 알렉산더 포프의 시를 영화 속에서 인용하고 있다. 중세 시대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이루어지지 않은 슬픈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엘로이즈는 집안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과 격리되기 위해 수녀원에 보내지고 시간이 흘러 결국 수녀원장이 된다. 수녀원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흠결 없는 마음(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한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마음이기에 영원한 빛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엘로이즈는 스스로가 너무 아픈 사랑을 했기에 폐허가 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삶이 더 나은 삶인 걸까. 생채기 없이 티끌 없고 맑은 삶을 선택할 것인가, 폐허라도 좋으니 괴로움도 행복도 함께 품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결국 이 두 주인공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다시 만났다. 서로가 너무 괴롭게 이별한 후 이골 나는 추억들을 힘들게 지우며 이별했다는 사실까지도 알았다. 그럼에도 다시 만날 것인지를 결정할 때 결국 "Ok."를 외친다.

너무나 쓸쓸한 응답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이별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사람이 어떠했기 때문에, 와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지내오며 생긴 습관과 삶의 방식 자체 때문일 것이다. 사실 다 좋은데 '그게 문제였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우린 '그 문제' 때문에 버텨올 수 있었던 것처럼. 그 결핍까지도 마음에 담았다면 우리의 오늘은 달라졌을까.


혹은


내 안의 결여를 밖에서 찾지 않았다면 그 결론은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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