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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Sep 07. 2021

1 전조증상

어쩌면 밤하늘은 검정이 아니라 파랑일거야.

Uprise - Megan Wofford 노래를 추천하며,




자영언니는 유독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언니의 화법은 신기했다. 

말의 꼬리에 또 꼬리에 또 꼬리를 무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어떻게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나 싶을 정도였다. 근데, 그런게 언니 화법의 매력이었다.


그런 자영언니가 갑자기 사라졌다. 

내가 나를 찾는 날, 그때 다시 돌아오겠다는 한 문장의 카톡 메세지만 남겨 놓은 채.


어느 토요일 아침, 거의 6개월 만에 언니를 만났다. 일주일에 씩은 만났던 우리의 최장기록이었다.

잦은 야근 탓이었는지 언니의 얼굴에는 눈에 보일정도로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어제 저녁, 언니는 한강을 건너고 있는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고 했다.

어스름하게 져물어 가는 해가 하늘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밤하늘은 검정이 아니라 파랑일거라고. 그래야 해가 질 때 보랏빛이 되는 게 설명이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하고 있을 때쯤, 언니의 대각선 방향에 있는 자리 하나가 났다고 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당연 그 자리는 남의 자리가 되더라며. 그래, 나는 늘 망설이는 사람이지. 어디서 본 건지 모르겠지만 망설임의 감정이 하거나 혹은 하지 않는 것보다 아주 나쁜 것이라고 하던데..., 역시 망설이니 자리를 뺴앗기는구나. 뭐 그런 굉장한 의식의 흐름대로의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창 밖으로 돌렸다고 했다.


"그날따라 지하철 문 앞 가장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지하철 밖 풍경은 유독 평화로워보였어..."


하지만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언니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가 느낀 그 평화는 폭풍이 오기 전의 밤과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밤하늘이 검정이 아닌 파랑일거라고, 망설임이라는 감정이 하거나 혹은 하지 않는 것보다 나쁜 것이라는 글을 읽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언니는 자신이 인생을 살며 그 모든 것들이 쌓이고 또 쌓이다, 바로 그 순간에, 정말 문득, 어쩌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만 같다.' 


그게 갑자기 너무 두려워졌다고 했다.

이게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을 보면서 감정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평화로운 풍경 덕에 어째 감정은 배로 처연해졌다고 했다.


"여태 살아온 내 삶을 부정하는 의미는 아니야.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거든.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어. 공부는 학생의 본분. 학생이라면 모름지기 공부 하나는 반드시 잘 해내야 하는 일로 생각했거든. 그렇게 전교권의 학생으로 살면서 나는 공부를 잘 하는, 선생님에게 예쁨 받는, 또는 반장으로 그렇게 십대를 살았지. 그 지나온 시간은 돌이켜보면 과거의 모범생이었다는 사실은 나의 자존감을 채웠어. 나는 어디서든 뭘 하든 잘할 사람이라는 믿음이랄까... 그 믿음은 물론 회사에 처음으로 출근한 날 바로 깨지긴 했다만.

대학생 때는 적당히 놀았지만 또 적당히 청춘의 방황을 겪으며 나름 찬란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만한 대학생활을 했던 거 같아. 지나보니 힘든 것도 다 빛나더라고. 원래 대학생활이라는 이름은 치트 키야. 그 어떤 것에 붙여도 다 푸릇푸릇하게 느껴지거든.

학점이 떨어질까 과제고 시험이고 발표고 늘 성실히. 뒤쳐질까봐 토익이고 HSK고 컴활이고 한국사고 스터디고 늘 바쁘게. 인맥이다 추억이다 쌓느라 동아리든 스터디든 매주 하나씩은 꾸준히.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학창시절에 '응당히', 찬란했던 대학시절에 '걸맞게' 나는 그만큼의 결과를 바랐고, 기대했고. 하지만 그 기대에 부응해줄 짐을 진 이는 또 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을 졸여가며 밤잠을 줄여가며 취업에 성공했어. 이렇게 말하니까 엄청 치열했던 거 같네. 그런데 뭐, 나는 남들만큼 했어. 딱 남들만큼."


언니는 창밖의 허공을 바라보며 읊조리듯 이야기 했다.

"그렇게 보통의 사람들만큼은 평범하게 살아온 내 삶인데. 갑자기 너무 시시해졌다. 이 모든 것이."


언니는 끊임없이, 매일같이 주어지는 과제들과, 스스로에게 기대한 것들에 대한 믿음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숨통이 막혀왔는데 그 숨막힘이 오늘날을 살아내기 위한 기본 요건이라고, 이 모든 힘듦은 당연한 것이라고, 너만 힘든 게 아니라 이정도의 평범함을 유지하려면 감수했어야한다고, 그게 여기서 살아가는, 아니 살아가기라도 하려면 해야하는 착각이라고, 그렇게 나도 모르게 채찍질 하고 있었던 것이었을수도.. 그렇게 언니는 말을 흐렸다. 


그러다 언니는 우리가 조금 젊었던 어느 날에 떠났던 바다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날의 감정을 회상하며 언니는 말했다.

"어쩌면 모든 건 내 선택이지.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조금 덜 기대하고 조금 덜 부담하며 내려놓고 사는 삶을 나는 계속해서 원하고 있던 거 아닐까..? 나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열심히만 살았지, 뭘 원한 것도 아니었잖아." 


그렇게 그날 한강을 건너고 있던 언니가 탔던 지하철은 다시 지하로 들어가고. 

매일같이 두터운 콘트리트 안에 갇혔던 자신의 생각들이 어느새 조금씩 그 콘그리트에 균열을 만들어내다가 결국 작은 구멍 하나를 내었나보다. 언니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했다. 


그렇게 언니는 일주일 뒤, 퇴사를 하고 사라졌다. 

아마 지금쯤, 언니는 그날 우리가 마주했던 바다에서 들었던 감정에 집중해, 언니를 찾아가고 있을지도.

나는 언니가 그렇게 나에게 돌아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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