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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하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은

행복하기에 앞서 독립부터 해야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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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look.so/posts/mbtB0Pm


- 글을 쓰게 된 목적 : 


엄마의 잔소리와 간섭에 지쳐 독립하고 싶다가도, 막상 독립하려니 불안했던 마음이 있었다. 태생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립심이 강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도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이라면 어떨까. 모임이 없으면 어떻게든 찾아다녀서라도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는 나는  왜 이렇게 모임에 진심인가를 되짚는다. 내가 지향하던 행복의 가치는 독립에 수렴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행복해지기에 앞서 일단 온전히 독립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문제제기를 던져본다. 나를 구성하는 네 가지 공동체인 [자신], [가족], [직장], [여가]을 분류하고 각각 고찰해보면서 에너지의 방향이 외부를 향하는 MBTI가 E인 유형은 모임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지 짚어본다. 결국 [여가] 공동체의 본질은 무엇인지 정리해 보았다. 난 한 번만이라도 행복하고 싶은데, 왜 나는 행복할 수가 없어! 그건 네놈이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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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탐구


독립을 하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은



0.

소모임이 없을 때

허전해서 못 참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어떤 모임이든 꼭 하나 이상 모임에 소속되어 살았습니다. 교회로 시작해 동아리를 거쳐 동호회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모임에 소속된 일상이 모두에게 익숙하고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런 소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최근 알게 되었습니다. 하긴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집-학교-집-학교만 반복하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굳이 이런 모임에서 활동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겠지만요.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매우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20년도 더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활동이자 공연이었는데, 당시에는 왜 그 공연을 잘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나 싶습니다. 공연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놓여 재미 반, 부담 반으로 준비했던 기억이 나네요. 동아리 전통이라는 허명 아래, 하나됨이라는 핑계로 뭔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나 자신이 좋았었는지도요.


저는 왜 그렇게 모임에 열성적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특히 저는 왜 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했었을까요. 제가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꼈는데요. 제가 어떤 모임에 소속되어 적응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전달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마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 되었을 운명이었을지도요.


모임에 소속되어 있는 게 익숙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저는 유독 모임에 참여하길 좋아합니다. 모임을 통해 받는 안정감, 소속감이 매우 중요한 사람인 듯한데요. 반대로 모임에서 소외되거나 거절당했을 때 받는 박탈감도 꽤 큰 편임을 몇 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소외된 사람들을 챙기려고 애썼는데요. 제가 선하고 착한 사람이라 그런 행동이 나왔던 게 아니라 제가 소외당하고 싶지 않아서 제 본능이 발동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외된 사람을 챙기는 걸 의도한 건 아니니 본능이 발동한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소속되었던 모임, 이제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는 모임을 생각하면 저는 인간관계에 참 진심이었다는 것을 봅니다. 인간관계에 어느 누가 진심이 아니겠습니까마는,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서 모임에 진심을 두는 비중이 꽤 큰 사람인 듯한데요. 좋게 말하면 관계에 섬세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예민하고 또 민감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모임에 열심을 넘어

엠티에는 더 진심인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는 게 단순한 일상의 일부가 아니란 것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COVID-19 때, 학교와 직장, 각종 모임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시기가 있었죠. 당시 COVID-Blue라는 말이 꽤 유행했을 정도로 꽤 많은 사람이 우울함을 경험했습니다.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답답한 그 느낌이 어제 일과 같이 생생합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유리문을 연 순간,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졌는데요. 감정이 엄청나게 슬퍼지면서 바닥으로 확 가라앉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온몸에 힘이 풀려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죠. 마치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외로움과 슬픔의 감정에 북받친 상태였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왜 이런 우울한 감정이 몰려왔는지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친한 동생에게 전화해서 현재 답답한 상황을 알리고, 이 문제의 원인을 함께 고민해달라고 요청했죠.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를 생각해 봤었습니다. COVID-19라서 여행을 못 가서 답답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비대면 모임을 하다 보니 마스크 쓰는 게 답답해져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지 등 다양한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당시 1주일 전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었던 터라 여행을 못 간 것이 답답함의 원인은 아니었고, 마스크를 쓰는 게 답답하긴 했어도 혼자 있을 땐 마스크를 벗기도 했으니 꼭 마스크가 핵심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그 밖에 생각해 보았던 다양한 이유를 놓고 보았을 때 각각 어느 정도는 그럴듯했고, 일부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했었지만 그게 제게 핵심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뭔가 더 뾰족한 원인이 있을 거로 생각했고, 그렇게 계속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보기로 시작했는데요.


여행을 아예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 자체가 제 삶에 필수 요소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어딘가로 놀러 가는 게 싫진 않지만, 어디에 놀러 가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놀러 가는지가 중요했는데요. 저는 장소보다는 대상이 중요한 사람이란 것을 다시 한번 직면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내 삶에 무엇이 결여되었는지를 따져보다가 떠오른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MT라는 키워드였죠.


MT라는 건 사이가 아직 좀 어색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함께 먹고 마시며 때로는 밤을 새워 단기간에 친근함을 극대화하는 수단입니다. 손꼽아 생각해 보니, 저는 늘 매년 MT와 비슷한 활동을 했더군요. 교회에서 방학 때마다 참여했던 수련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캠프, 학교에서 주최하던 OT, 동아리와 동호회에서 주최하는 MT 등 행사에 매년 1~2회 참여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급격하게 친해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에는 생애 최초 이런 행사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저는 MT형 인간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진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쫙 풀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었죠. 아픔의 원인과 이유를 알면, 고통이 꽤 반감되는 효과가 있는데, 그 효과를 누린 모양입니다. 한 해 동안 MT가 없었던 것이 내가 겪은 우울함의 핵심 원인이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만 당시에는 꽤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요. 팬데믹에서 엔데믹이 될 때까지 3년이나 걸렸으니, 당시 이 답답함의 원인을 찾지 못했으면 오랫동안 마음고생했을 듯합니다.



2.

여가 공동체의 역할은

윤활유와 보험과 같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는 무엇일까요?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는 [자신]입니다. [자신]은 혼자니까 공동체라는 말을 쓰기 어색하죠. 하지만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의 육체, 생각, 감정이 원활하게 소통하려면 [자신]이라는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데요. 나의 육체와 생각, 그리고 감정은 각각 어떤 것을 원하는지, 혹시 각각 서로 원하는 것이 달라 인지부조화가 일어나고 있진 않은지 주기적으로 짚어보아야 합니다. 육체와 생각, 그리고 감정 사이에 발생하는 인지부조화는 현타를 일으키고, 스트레스를 만드는 핵심 원인이 되는데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자신] 공동체의 상호 간 의견 조율은 꼭 필요합니다.


[자신]을 벗어나 만나게 되는 처음 공동체는 [가족]입니다. [가족]은 가장 친밀한 관계이기에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그만큼 상대방의 감정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데요.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종종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상황과 선택을 존중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가스라이팅하기도 합니다. 가족이라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사랑이 진짜 사랑이었을까 싶기도 하죠.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가족 구성원의 선택을 [존중]하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괜찮다는 [신뢰], 선택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리라는 [믿음]이 동반되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족]을 벗어나 만나게 되는 공동체는 [직장]입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니, 학생이 학교를 가는 것도 [직장]이라고 볼 수 있겠죠. [직장]은 자신의 정체성과 직결됩니다. 내가 먹고 마시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나를 결정짓듯, 내가 하는 일은 곧 나를 결정짓는데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체화하기에 자기 일을 선택하는 것, 선택한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그토록 싫어하던 일을 그만두었더니, 몇 년 만에 급격하게 노화가 왔다는 얘기가 있죠.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쉽게 소개할 명함이 없다는 건 스스로 위축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계급장을 떼어놓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요. 내가 이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직장]을 벗어난 상태에서,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공동체는 [여가]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세 가지 공동체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공동체인데요. [여가] 공동체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취미 활동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생존에 직결되는 직장보다 더 중요하진 않으니까요. 또한 앞서 설명했던 공동체가 충분히 건강하게 소통한다면, 그 공동체 안에서 여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함께 취미 생활을 공유하면서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있는 것이죠.


문제는 [자신], [가족], [직장], 세 가지 공동체만으로도 관계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에너지의 방향이 외부로 향해 있는 사람, MBTI로 말하면 E 성향을 보인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지속하여 만날 수 있는 네 번째 [여가] 공동체가 절실하죠. 누군가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여가 공동체가 누군가에게는 없어선 안 되는 필수 모임이라니 참 안타깝죠.


한편, [여가] 공동체의 역할은 [윤활유]입니다. 자동차는 휘발유, 경유 등으로 움직이므로 윤활유가 없다고 해서 안 움직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윤활유가 부족해서 엔진이 뻑뻑해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금방 고장이 날 수밖에 없겠죠. 여유와 빈틈은 단기간에는 필요 없어 보이고 효율이 떨어져 보이지만, 중장기 관점으로 생각했을 때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여가] 공동체의 본질은 [보험]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가입해서 보상을 받는 보험처럼 [자신], [가족], [직장], 세 가지 공동체가 없어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는 셈이죠. 인간은 원래 갖고 있던 영역이 해소되지 못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됩니다. 평소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 미국으로 유학 가서 한인 교회에 출석한다거나,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대학 생활을 보내는 사람이 대학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열정을 다해 참여하기도 하죠. 자신을 구성하는 가족 공동체의 결손을 채우려는 [본능]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게 [여가] 공동체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수 가입할 보험인 셈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네 가지 공동체를 게임에 대입해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요. [자신]은 마이페이지에 들어가면 기본으로 제공하는 기본 [스킨], [가족]은 한정된 시간 동안 제공되는 보호막이자 울타리인 [쉴드] 아이템에 대응됩니다. [직장]은 육체를 생존하게 하고, 정신을 유지하게 제공하는 [포션] 아이템, [여가] 공동체는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대비해야 할 추가 [슬롯]에 대응되겠죠. 일단 기본 [스킨]과 [포션]만 있어도 단기간 살아갈 수 있지만, 장기 생존을 위해서 [쉴드]와 [슬롯]을 장착할 때가 올 것입니다. 제 삶에 [여가] 공동체가 필수인 것은 인정하겠으나, 이러한 [여가] 공동체가 현생에 너무 많은 영향을 주는 것도 곤란한데요. [슬롯]이 없다고 게임을 못 하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3.

독립을 하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은 


https://youtu.be/zAaLhgnid60?t=858


아이들을 키우실 때, 그래서 사실 아이한테 가장 중요한 건 행복이 아니라 독립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아이가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교육을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행복은 원래 우리 모두 알지만 되게 주관적이잖아요. 사람마다 행복이 다른데 내가 아이가 행복하면 좋겠어 하는 순간 자신의 행복이 들어갈 여지가 생길 수 있어요. 좋은 대학 가야지, 좋은 직장 가면 행복하겠지. 그러니까 아이의 행복을 생각하는 순간 위험할 수가 있고. 사실 인간만이 교육을 하는 게 아니고 동물도 교육을 시키거든요. 동물들의 교육의 목표는 아주 명확해요. 혼자 먹고 살 수 있기만 하면. 독립이네. 인간의 기본적인 목표도 아이가 혼자 스스로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이루게 하는 게 첫 번째 목표가 되는 것이고. 행복은 이제 지가 찾아야죠.

_ 영상 中 14:18~15:06


저는 김상욱 교수님이 말씀하신 이 영상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고 있던 행복의 의미가 좀 더 구체화하였습니다. 행복은 각자 정의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기에 정의를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요.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오해가 많습니다. 아마도 행복은 물질의 성공, 시간의 여유, 정신의 만족 등 다양한 상황을 포괄하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재정의하려고 한들, 이미 관념 속에 막연하게 자리 잡은 행복의 개념을 바꾸기란 어렵습니다. 각자가 이해한 대로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니 굳이 바꿔야 할 이유도 없고요.


지금까지 행복이란 주제를 놓고 다양하게 얘기했지만, 제가 이야기해 왔던 행복은 [독립]으로 수렴됩니다. 즉, 독립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정리할 수 있겠는데요. [자신], [가족], [직장] 공동체 안에서 [나]는 온전히 독립되어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자는 것이죠.


나는 육체와 정신, 그리고 감정이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육체와 정신, 그리고 감정의 필요가 서로 달라서 인지부조화가 오고 있진 않은가?
가족 공동체 안에서 내가 내린 선택은 온전히 존중받고 있는가?
가족 공동체 안에서 다른 구성원의 생각과 선택을 기다려줄 수 있는가?
나의 필요와 직장이 추구하는 방향이 어디까지 달라도 괜찮은가?
직장과 직위가 없어도 나 자신을 스스로 설명할 키워드가 존재하는가?
나를 구성하는 기본 공동체의 결손과 부족이 여가 공동체의 필요를 만들진 않았는가? 
여가 공동체에 나는 얼마나 많이 동일시하고, 의존하고 있는가?



외롭고 싶지는 않기에 늘 공동체를 찾아가 안정감과 소속감을 누립니다. 하지만 안정감에 과도하게 젖어 드는 것을 경계하게 되는데요. 잊을만하면 위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서 언제든 공동체에서 벗어나 독립할 것을 준비합니다. 독립하고는 싶은데 외롭긴 싫으니까 맞게 되는 일종의 예방 주사죠. 어떤 공동체에 과몰입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 공동체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면, 벗어날 때 충격이 커질 겁니다. 그러니 독립의 단계에 도달하기는 여간 어려운데요. 동일시하고 과몰입하고 있다가도 언제든 버릴 수 있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독립은 높은 수준의 의지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일에 대해 과몰입하는 행위를 도무지 포기할 수 없으니, 결국엔 더욱 주도적으로 일하기 위해 창업하고야 마는 것처럼요. 마찬가지로 기존의 가족 구성원으로 지내다가, 새로운 사람과 만나 독립하여 새롭게 가족도 꾸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죠. 지금까지는 잘 맞지 않아도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기성복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으니 맞춤복 시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 되뇌어 봅니다. 독립을 하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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