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스러운 모습이야말로 인간적입니다만
연애할 때는 말없이 조용한 남자가 좋다더니, 결혼하고나서는 무뚝뚝해서 싫다는 변덕을 가진 사람을 종종 만날 때가 있다. 이러한 변덕은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닐까. 인간의 욕망의 관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흔히 갖게 된다는 사랑의 콩깍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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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탐구
묵묵히 듣길 바라면서
무뚝뚝한 것은 싫다니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항상 존재해왔다. 영어로는 ‘Love is blind.’라는 말이 있는데, 상대적으로 우리말 속담처럼 와닿진 않는다. 어쨌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상대를 더 아름답게 생각하게 된다는 말은 꽤 보편적인 현상이다.
사랑에 빠진 초기, 상대방에 관한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한마디 말 없이 묵묵히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며 호감을 갖게 되고, 관계는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일상을 공유하게 되면, 처음의 감정은 점점 다르게 변한다. "우리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통 말이 없어." 말없이 묵묵했던 모습은 어느새 무뚝뚝하다는 불만으로 바뀐다.
사실 달라진 건 시점과 관점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상관없이, 여전히 상대방은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는 점점 커지고, 내 기대에 맞춰 상대가 변해 주길 은근히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처음엔 장점으로 보였던 부분이 단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순간, '콩깍지'는 그렇게 벗겨진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었나 싶은 생각에 때로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말없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의 답답한 감정을 보듬어주고 경청하다가도, 충분히 감정이 해소된 후에는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해결책까지 내려주길 바란다. 이렇게 섬세하게 나를 배려하고 적절한 순간을 짚어가며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몹시 귀하다. 오랜 시간 다양한 인간관계를 겪으며 훈련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문제는 이렇게 귀한 사람을 쉽게 만나길 바라면서 정작 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기에 이러한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을 한 문장으로 나타내면, ‘최대한 덜 노력하면서 극한의 효과를 얻고자 한다’는 마음이다. 이 말은 내로남불, 불로소득, 책임 없는 쾌락, 가성비 추구, 최적화 등으로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말없는 사람이 좋다'고 말하면서 '무뚝뚝한 건 싫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최적화되지 않은 상대방이 미운 탓이다.
반대로 활발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좋다면, 그 사람의 에너지와 활동성에서 비롯되는 결과들, 예를 들어 친구들과의 잦은 모임이나 시끄러운 술자리 같은 것도 함께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내 앞에서만 신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상대방을 온전히 그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다시 ‘콩깍지’라는 말로 돌아가 보자. 많은 이들이 콩깍지를 ‘착각’이나 ‘판단 오류’로 여긴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콩깍지란 오히려 관계 초기에만 나타나는 몰입의 정점이자, 감정적으로 상호 최적화된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시기에는 뇌와 감정이 함께 반응하며, 에너지 수준이 극도로 상승한다.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하며, 스스로도 그 관계에 맞춰 부지런히 움직인다. 마치 상대방의 언어와 감정에 스스로를 ‘동기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단순한 착각으로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에게 깊이 몰입하는 과정은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게 한다. 콩깍지는 상대방의 협력을 유도해내는 고도의 생존 전략이다.
문제는 이 최적화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관계가 안정기에 접어들면, 뇌는 더 이상 몰입을 유지하지 않게 된다. 잡은 고기에게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는 것처럼, 평소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조금씩 노출된다. 그제서야 서로 진짜 이기적인 모습을 마주한다. 더 이상 최선을 다하지 않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낀다.
물론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상대방을 향한 몰입을 평생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나 상대에게 동기화되기 위한 ‘애씀’이 필요하다. 그 애씀이 계속 쌓일 때, 비로소 관계는 콩깍지가 벗겨진 이후에도 단단하게 유지된다. 이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상대방과 동기화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 된다.
감동은 이기적인 모습을 통해 생겨나지 않는다.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 오히려 ‘인간미가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진정한 감동은 부자연스러운 노력에서 나타난다. 인간이라면 이기적이어야 정상인데,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질문을 남기게 만들어야 진짜 감동이 온다. 나 역시 몹시 이기적이지만, 감동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