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당연한 일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꽤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의 수도를 키예프로 안 읽습니다만

- 바로가기 :

https://alook.so/posts/mbtmkj


- 글을 쓰게 된 목적 :


키예프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불리는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키예프는 러시아식으로 읽을 때 그렇게 읽는 거고,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식으로 읽을 때 그렇게 읽는 거란다. 심지어 키예프는 러시아의 도시가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수도인데도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발음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외국 사람들이 우리 서울을 아직까지도 경성이라고 부르고 있거나, 일본식으로 케이죠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알고 있었다면 이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당연하지 않은 것을 원래대로 당연하게 만드는데 참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는 걸 느낀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일본이 강대국이니,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독도는 일본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키예프를 키이우로 바꾸는데 전쟁이 필요했고,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데 무려 소설 한 권이 필요했다. 아무리 사람마다 상식의 기준이 다르다지만,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요구하는 게 이렇게 힘이 들다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게 왜 이리도 어려운가.


#alookso #얼룩소 #글쓰기 #큐레이션 #신문기사깊이읽기 #신문기사톺아보기 #핵심기사모음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우크라이나전쟁 #키예프 #키이우 #당연한일을하는데도에너지가꽤필요하다 #홍길동 #아버지를아버지라부르지못하고 #내게는복잡한절차가 #저사람은말한마디로 #불공평한게어쩌면우리네세상


당연한 일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꽤 필요하다


요즘 포털 사이트를 봐도, 심지어 alookso를 봐도 온통 메인을 뒤덮는 뉴스는 [대통령 선거]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두 사건 모두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비슷한 종류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게 되면 피로도가 많이 높아져서 정작 뉴스를 놓치게 될 수 있죠. 저도 오늘 마침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내용을 가져오긴 했지만, 전쟁 자체보다는 조금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해당 내용 관련으로 alookso 검색 기능을 통해 확인해보니, 딱 한 분이 관련된 내용을 써주셨더라고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의 발상지로 러시아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우리 민족과 대비해서 생각하면,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신 만주 지역 정도로 비유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지역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키예프로 표기되었죠. 그런데 정작 우크라이나인들이 부르는 발음은 [키예프]가 아니라 [키이우]입니다. 마치 우리는 연변으로 부르지만, 중국 발음으로는 옌벤이라고 부르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발음 문제 논란은 평시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기에, 강대국 눈치를 보면서 러시아식 표기법을 따르게 되기 마련인데요. 2022년 러시아와 전쟁이 터지고 나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에 대한 인식이 활발해지면서 재조명되었습니다.


마침 지난 3월 1일은 우리 민족에게 뜻깊은 기념일인 삼일절이었는데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본에 맞서 싸웠던 조상들을 기리며, 러시아의 침략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표기법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습니다. 국립국어원, KBS 한국어 연구부의 자문을 받아서 3월 1일 KBS 뉴스에서 키예프를 키이우로 고쳐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이 있기 전, KBS 사내게시판에서부터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기 시작되었다고 하는군요.


이후 3월 2일 중앙일보/경향신문/YTN/연합뉴스/조선일보/JTBC/MBC/SBS가 표기법을 우크라이나 식으로 바꾸는데 동참하게 됩니다. 3월 3일 대한민국 외교부도 향후 키이우로 표기법을 바꾸기로 결정하게 되죠. 일반적으로 알려진 나라/도시의 이름 표기법을 바꾸기 쉽지 않은데, 과거에 우크라이나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기에 이렇게 바꿀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한번 굳어져 버리면 바꾸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앞에서도 몇 가지 예를 들긴 했습니다만, 실제 발음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북경/동경/불란서/이태리/독일/미국/영국/호주/화란 등의 표현은 한자 혹은 일본어식으로 음차하거나 음역하여 부르는 명칭입니다. 오랫동안 불렸기 때문에 표기법이 굳어져서 이제 와서 뒤늦게 바꾸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기에 그대로 두고 쓰게 되었죠. 불란서/화란은 이제 프랑스/네덜란드로 바꿔서 부르는데요. 가끔씩 프랑스어를 불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지만, 이제는 불란서라고 부르는 데 오히려 어색한 느낌입니다.


이름/도시/국가 등 고유명사는 그 나라 말로 불리는 대로 부른다. 증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이 한 문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뉴스가 될 정도라니. 마치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해야 사회생활 잘한다는 이야기와 어딘가 모르게 맥락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얘기와도 비슷하고요.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일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정말 당연한 게 맞는지, 항상 왜 그러한지 의문을 끊임없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되도록 만든다는 건 참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 같아요.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당연한 일을 하기 위해 소설 한 편 분량이 필요했고, 전쟁이 나서 해당 지역이 알려지는 바람에 우리가 러시아식으로 알고 있던 명칭 키예프를 키이우로 부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직접 전쟁을 치르고 있어서 감히 비교하긴 어렵지만, 비유적인 표현으로 우리도 각자 매일 전쟁 같은 삶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죠. 각자만의 원칙을 품에 안고 업무에 임하지만, 때로는 이 세상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 속에 있을 때가 많죠. 똑같은 일을 할 때에도 어떤 사람은 말 한 마디면 끝나는데, 내가 하려면 수많은 절차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머슴이라 여기며, 중요한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 잘 모르겠으면 국민 앞에서 질문을 던져서 답을 얻어야 당연할 텐데, 정작 머슴들끼리 단일화하는 건 몰래 머슴들끼리 모여서 은밀한 장소에서 결정해버리는 게 결국 현실 정치니까요. 머슴에게 누가 주인인지 알려줘야 하는 게 참 당연한데 말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당연한 일을 하는데도 에너지가 꽤 필요하다는 것이겠죠.



매거진의 이전글 대통령 선거 토론회를 한번도 보지않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