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리투아니아를 한국 뉴스에서 검색하면 대만대표부 설치와 관련한 중국과의 갈등이 심각하게 보도되고 있다. 한국 뉴스에서는 중국에 ‘맞짱’을 뜬 ‘배짱 좋은 나라’로 묘사되고 있는데 겨우 몇 달 이곳에서 살아보니 내부자로서 보게 되는 시선이 있었다. 아마도 그 근저에는 거대 공룡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 다운 용기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처음에 빌뉴스에 왔을 때 제일 먼저 찾은 건 싼 물건을 싸게 파는 곳이었다. 작게는 숟가락부터 크게는 가전제품까지 살게 한두 개가 아닌지라 이 나라에 다이소가 없다는 게 참 아쉬웠었다. 그런데 다이소뿐 아니라 스타벅스도 없고 버거킹도 없고 그동안 당연시하며 만나왔던 글로벌 브랜드가 없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럼 이 사람들 중국 제품을 안 쓰고 어떻게 살지’,
이미 너무 일상화된 중국산에 익숙해진, 자본주의의 천국인 한국 사람인 나로서는 ‘신기방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형가전 들 중 좀 싸네 하고 생산지를 보면 made in Sweden 혹은 Estonia나 Poland 같은 인접국들 게 많았다. 유럽의 브랜드들은 거의 다 들어와 있어서 Zara, H&m 같은 SPA 브랜드들이나 IKEA를 보면 반갑기도 했다. 식료품 대부분은 리투아니아산이다. 중국산이 없어도 불편함은 없고 EU내에서 리투아니아 물가는 굉장히 싼 편이다. 하지만 아직 이곳은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굉장히 조심스럽고 조금 더 과장하자면 폐쇄적인 무역구조를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단 중국과의 관계만 보고 무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가치 중심의 정치체계’를 선택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고 러시아의 오랜 탄압을 받았던 지라 대만과의 관계에서 동병상련을 느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빌뉴스 내에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구도심과 상반되게 곳곳에 남아있는 구소련 시대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회색지대가 있고 중년 이상의 나이대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데는 분명 교육과정안에 러시아어가 들어가 있었을 것이며, 1992년 독립을 얻을 때까지 이 민족이 경험했을 상실과 상처가 도시의 군데군데서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경험해 본 리투아니아 정서 중 하나는 서글픔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기억하는 한국인으로서 대만과 홍콩을 못살게 구는 중국을 보면서 느끼는 리투아니아인들의 공감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 어불성설이려나. 그래서 더 이 나라의 용기 있는 선택에 손뼉 쳐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리투아니아의 IT 기반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교육 수준은 EU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이며,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인구 비율이 92%를 넘는다고 한다. 실제로 만나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은 정말 뛰어났고 질문들은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IT기반 물류시스템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물건을 배송하면 정말 정확하게 도착했다. 그런데도 폐쇄적 무역과 경제체제를 가진 데는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한국대사관이 이 땅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물맷돌을 던져 거대 공룡을 무너트린 다윗처럼 리투아니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잘 이겨주길 기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