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오해와 이해?
2021.12.25. 크리스마스
하루 종일 보라색 털실로 모자를 떴다. 뜨개질은 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니까, 모자를 다 뜨면 예쁘게 쓰고 동네나 산책해야지 야무진 생각을 하며 숙제하듯 미루고 미뤄 두었던 '오징어 게임'을 설렁설렁 보며 무릎담요를 덮고 계속 뜨개질을 했다.
‘나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뭐 했지? 맞다. 격리 호텔에 있었지....’
‘아이고..... 그때보다는 양반이구만’, 생각하며 ‘예수님 고오맙습니다. 이 땅에 와 주셔서......’ 감사하며,
‘참, 2020년 성탄절에도 격리 호텔에서 하루 만에 도착한 쿠팡 주문 털실을 받아 들고 대한민국에 도착했음을 뜨겁게 느끼며 뜨개질했었지 ㅋㅋ’.
불현듯 웃음이 나왔다. 메멘토 모리도 아니고 이거야 원. 매해 성탄절을 기념하며 모자를 뜨고 있자니 뭔가 짠하기도 하고 거의 다 완성된 모자를 대충 쓰고 산책이나 하자며 집을 나섰다.
역시나 눈발이 날린다.
‘오늘은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했는데......’
‘커피나 한 잔 하고 들어가면 좋을 텐데......’
너무나 호사로운 고민을 하다가 마침 문을 연 카페가 있어 들어갔다.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한 눈에도 코카서스 인종이 아닌 부부로 보이는 남, 여가 너는 왜 크리스마스에 혼자 우리 카페에 왔니를 눈으로 말하며 주문을 받는다.
나 역시 너네는 왜? 크리스마스 날도 문을 열었니? 아무튼 고마워하며 눈인사를 나누고 벨기에식 와플 하나와 라떼를 주문하고 눈이 오는 거리가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커피는 생각보다 맛있었지만 와플은 휘핑크림을 너무 얹어줘서 인지 바삭하기보다는 약간 느끼한 맛이군, 내가 한 게 더 맛있겠어 생각하며 눈 오는 크리스마스 거리를 평화롭게 구경하려는데
문소리가 들린다.
"헤이 메리 크리스마스~~"
가게문에 매단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대낮부터 한 잔 했는지 싶은 하이 된 톤의 리투아니아 청년이다.
“웨얼 알류 프롬?”
“아. 암프롬 이란”
“와우 프롬 이란”
아하 나도 궁금했기에 페르시안이군 혼잣말을 했다.
어쩌고저쩌고 평화롭던 정적을 깨던 그 청년은 이 추운 날 '아아’를 한 잔 사들고 가게를 나갔다.
'휴~ 다행이다. 아 글을 좀 쓸까?' 하며 휴대폰을 찾고 있는데 또 누군가 딸랑 소리와 함께 들어온다.
이번에는 키가 구척장신인 커플이다.
“하아이~~ 메리 크리스마스!”
“웰 알류 프롬”
주문을 하려던 구척장신 여자분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너 먹고 있는 와플 맛있냐고 물어본다. 엄지를 보여주며 맛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아닌가? 아니면 오늘 성탄절이라 모두 기분들이 좋은가? 평상시 같지 않은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모습들이다.
이후에 들어오는 손님들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계속 같은 질문을 던진다.
등 뒤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웰 알류 프롬’의 질문에 카페 주인 양반은 계속 이란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친절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말
이날 문득 깨달았다. ‘너 어디서 왔니’에는 ‘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구나’가 포함되어 있구나.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이 말이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데 막상 한국인이 삼십 명도 살지 않는, 아니 한국인이 아니라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을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나라에서 살다 보니 나와 같은 색목인들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끼게 된다. 유럽의 사람들은 워낙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기에 다름을 차이를 더 잘 이해하고 인정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 ‘아무렇지도 않음’이 ‘무심함’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분명 이 부분은 단일민족 국가에서 자라온 내가 갖는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앞으로 절대 너 어디서 왔니 물어보지 말아야지’
카페 주인에게 커피가 맛있다고 말하고 카페를 나왔다.
벌써 어두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