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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May 16. 2022

빌뉴스의 봄

동해의 바다색을 닮은 빌뉴스의 하늘 

"거가 어디라고? 리쿠니아?"

"아아~니, 리투아니아라니까~"

여전히 딸내미의 파견국을 나름대로 발음하시는 엄마에게 내가 있는 도시까지 외우게 하는 건 무리였다. 

하긴 나도 처음 들어본 도시였으니 빌뉴스가 제대로 된 발음인지 빌니우스인지, 어디에 있는 어떤 도시인지 정보는 제로에 가까웠다. 이 사람들은 무슨 말을 사용하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그리고 계절은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비행기에 올라 여기에 오기까지 그리고 꼬박 여섯 달을 살기까지 이곳은 나름 편안했고 다정했으며 무엇보다 조용했다. 그리고 이들은 감자를 백가지도 넘는 방법으로 요리해 먹고 발트어에 속한 언어를 쓰며 계절은 사계가 있다곤 하지만 지루하고 우울한 겨울이 일 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작년 11월에 도착한 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을 굳이 찾자면 지독히 춥고 흐린 햇빛 한 줌이 아쉬운 겨울 날씨였다. 비타민 D를 꼬박 챙겨먹고 실내에서도 내복을 두 개 입고 후드를 입고 지내도 한국처럼 이중창이 없는 실내는 싸늘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눈과 하루에도 몇 번씩 개었다 흐렸다는 반복하는 날씨는 저절로 목이 빠지게 봄을 기다리게 했다. 

하지만 3월이 다 가도 4월이 다 가도 심지어 부활절에도 눈발은 날렸고 아침 기온은 영하가 되기 일쑤였다. 겨우 5월이 되엇야  곳곳에 드디어 노란 민들레와 데이지가 올라오면서 봄이 오고 있음을 넌지시 알리고 있었다. 

리투아니아는 숲과 호수의 나라라고 할 만큼 도심 곳곳에 꽤나 깊은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숲의 오솔길은 야생의 것 그대로 남겨둔다. 사람들이 자주 다녀 길이 난 그대로 남아 있고 온갖 새소리가 숨비소리처럼 숲을 맴돌고 "지붓떼(zibutes)'라는 보라색 꽃과 봄맞이 꽃들이 나무 아래 옹기종기 피어있다. 지난 3월 어느 날 동네 산책을 하다가 만난 보라색 지붓떼를 보고 사진에 담아와 학생들에게 이 꽃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 선생님, 지붓떼예요. 지븟떼가 피면 이제 곧 봄이 온다는 뜻이에요"

"아~~ 그렇군요"

봄의 전령사였구나. 너는


하지만 지붓떼가 피고도 한 참 지난 5월이 되어서야 이제 겨우 나뭇잎들이 연두 빛으로 변하고 있다. 사람도 이렇게 견디기 힘든 혹독한  겨울을 이끼 옷으로 겨우겨우 버텨낸 기특 한 나무들은  겨울 눈이 올라온 채로 눈을 또 맞고 발틱의 싸늘한 바람을 견디고 겨우 새순을 내 비치고 있다. 솜털 가득한 겨울눈에서 모두 꽃이 나올 줄 알고 기대했는데 데 올망졸망 먼저 꽃처럼 얼굴을 내민 아이들은 꽃이 아닌 나뭇잎들이었다. 구겨진 손을 겨우겨우 펴내 한국의 동해 바닷 색 하늘에 얼굴을 편 귀여운 새순들이 살아간다는 것의 겸허함을 배우게 한다.


빌뉴스에서 꼭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자면 '하늘'이다.

마치 우리네 제주의 하늘처럼 겹겹이 구름이 적층을 이루고 높은 산이 없어 가려진 곳 없이 쫙 펼쳐진 하늘은 빛이 좋을 때는 동해 바다색을 띠고 해가 질 무렵에는 핑크빛으로 변한다. 서머타임으로 해가 길어진 요즘 9시 반까지 환해서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데 6월이 되면 밤 열두 시까지 해가 있는 백야가 계속된다고 한다. 흙길을 걷고 또 걸으며 뽀얗게 먼지 앉은 운동화를 보며 왜 길을 포장하지 않지? 부서진 아스팔트를 왜 보수하지 않지?라고 들었던 의구심도 이젠 모두 접어두게 되었다.  비가 오면 물을 쫘악 끼얹고 지나가게 만드는 도로 위 물 웅덩이들을 보면서도 이젠 그려려니 하게 된다. 오랜 건물, 오랜 길, 십 년이든 백 년이든 있는 그대로를 즐기고 사람들의 발길에 홈이 파인 이백 년 삼백 년 된 성당 입구를 지나며 정작 중요한 건 새것이 아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란 걸 빌뉴스라는 도시가 가진 기품에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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