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으로서의 나

by Earnest

팀원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과연 얼마나 나은 팀원이 되었을까?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어도, 결국 나는 내 상사의 팀원에 지나지 않는다.


팀원들을 이끌면서, 내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맞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라는 것들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것들을 내재화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내가 팀원일 때는, 뭔가 가져갈 것이 있어야만 중간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업무에 지연이 있거나, 사소한 업데이트는 팀장에게 가져갈만한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업무의 지연이 있을 경우라도 상사는 중간 상황을 알고 싶어 한다. 직접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보고하는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꾸로 묻기 전에 미리 업데이트는 필요하다.


또, 내가 바쁘게 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팀장님은 내가 업무에 치이고 있다는 것을 알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검토하는 문서가 이렇게 많고, 소통하고 있는 이메일이 이렇게 많은데, 이걸 못 알아챌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팀원들의 업무량을 파악하는 것도 팀장 업무의 일부이다. 그렇지만, 팀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팀장에게만 할당된 일도 상당하다 (+조직 관리, 평가, 채용,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회사의 프로젝트 등). 거기에 팀장 본인의 업무까지 더해지면, 어슴푸레 네가 일을 많이 하는구나 감은 오지만, 팀장님이 내 공을 알아주겠지의 선까지는 생각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모여, 내가 이때까지 몰랐던 것들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있었다. 우선 가장 기억에 남는 개선이라고 한다면, 실무자로서 내 의견을 대쪽같이 피력했던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업무를 담당해서 하다 보면, 중2병이 도지는 대리/과장 시절이 도래하기 마련인데, 그때는 내가 최고인 줄 아는 경지에 이른다. 그러면 내가 가진 지식 내에서 불가능한 것들 혹은 말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방법을 찾아보라는 지시가 있을 때, 그 자리에서 왜 불가능한지를 논리적으로 전달하기에 급급했다. 그대로 물러나면 말도 안 되는 일을 진짜 해내야 하는 불상사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걱정 반, 내가 아는 것이 이만큼이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팀장이 되어보니, 팀장도 어느 정도 말이 안 되는 것을 알면서 팀원에게 '아이디어를 가져와봐라'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너와 내가 머리를 맞대보자,라는 것인데, 무작정 그 자리에서 안된다고 나서는 팀원은, 왠지 모르게 내 안에 오기라는 것을 불러일으켰다. 절대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래서 안 될 것 같습니다'라는 답변을 가져오는 팀원이라도, 그 자리에서만큼은 '알겠습니다. 생각해 볼게요'라고 물러나는 팀원에게 마음이 가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나도 이런 모습을 내재화했다. 속으로는 '뭐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게 될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해도, 그 자리에서는 생각해 보겠다고 한 뒤, 나중에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자료를 모아다가 말씀드리면, 상사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 지금까지도 내재화하지 못한 부분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어필이다. 업무에 대한 인사이트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예전에는 중요도가 (2)인 일을 가져가서 보고를 드렸다면, 이제는 (2)인 일은 팀 내에서 처리하고, (3)인 업무에 대한 보고를 드렸다. 이게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더 중요한 일에 대한 보고만 진행하게 된 것이다. 사실 전략적으로 그리하게 된 것은 아니고, 일에 치이다 보니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직 내 사수이자, 옆 팀의 팀장인 그는 달랐다. 정말 사소한 것도 보고서를 만들고, 보고 자리를 만들었다. 사실 속으로는 업무의 경중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팀의 사소한 것까지 다 보고할 요량이면, 팀장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내 상사는 그의 업무 스타일을 더 선호했다. 이유는, 사소한 일이지만 보고서를 만들고 보고를 진행하면서 팀원들이 전체적으로 성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팀원이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나도 한가로이 보고서를 만들고 보고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백 번이고 했겠지. 보고가 아니라 현업을 쳐내는 데만 하루 꼬박 12-18시간씩일을 하는 나를 보고도 팀원의 성장을 운운하니 맥이 탁 풀렸다. 나한테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옵션인가? 그러고는 다짐했다. 그래. 나도 앞으로는 일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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