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 않는 사랑
씩씩 화가 나는 이 밤에 왜 화가 나는지 살펴본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나. 인상을 팍! 쓰고 욱하는 말들을 속에서 중얼거리고는 이내 밖으로 분출한다. 시간 때우기 게임을 하면서도 온통 욱 한다. 캐릭터의 행동과 말투에 비아냥 거리게 된다. 속에서 부글부글 용암이 들끓는다. 뭐지? 왜지?
생리 중이어서 그러겠지. 식단 조절 중이어서 그럴 거야. 지난밤 잠을 설쳤잖아. 잠을 푹 못 자서 그러겠지. 대충 이유들을 찾다가 알아차린다. 아까 그 일들 때문이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일어날 무렵에 남편이 불쑥 들어와 나를 지나 세면대에서 양치질 준비를 했다. 순간 몹시 짜증과 화가 났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소변 냄새가 훅 올라오는데 그 무렵에 들어온 거다. 들어가도 되냐고 묻지도 않고 말이다. 내가 욱 해서 화를 내었는데도 슬쩍 웃고는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무성의하게 “미안해요.” 하면서 나간다. 구시렁대는 나에게 은설이는 가세해서 “왜 나랑 쌍둥이인 아빠한테 화를 내냐”면서 뭐라 한다. 남편도 짜증 나 죽겠는데 저것도 불을 지핀다 아주. 짜증 나. 싫어 진짜.
내게 없는 것을 바라고, 없다며 아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때, 나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친정아빠를 말하는 거다. 아빠는 늘 내게 없는 것을 요구했다. 내가 가진 것은 봐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은설이도 그러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나는 남편과 다르다. 나는 남편처럼 감정이 일정하지 못하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표정에서 말투에서 너무나 드러난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은설이는 내가 화를 내면 “엄마 사랑해요.”라고 평화의 손길을 건넸지만 나는 풀리지 않았다. ‘표정이 왜 그러느냐 왜 화난 목소리로 말하냐’ 묻는다. 감시받는 느낌이라 숨이 막힌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하나 교정을 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욱하게 되면 결국 아이는 울면서 미안하다고 나에게 더 매달리거나 아니면 아빠에게 간다. 그 결과 또한 몹시 불쾌하고 도망치고 싶다.
“엄마 품은 재밌긴 하지만 따뜻하지 않아서 잠이 잘 안 와요. 아빠품은 따뜻해서 잠이 잘 오는데.”라고 말하는 은설이에게 나는 뭐라 해줘야 하나. 아이의 표현에 대한 반응이 느려진다. 내 감정은 내 감정대로 추슬러야 하고 아이에겐 그에 맞게 해줘야 하는데 어려워진다. 내가 싫다는 아이를 뭐 어쩌겠는가. ‘그런 말 하면 엄마는 속상해.’라고 해줘도, 여전히 아이는 아이 감정이 우선인 거다. 휴우.
내가 너무 내 감정에만 취해있던 걸까. 남편이나 아이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지 않아서 내가 이해를 못하는 걸까.
아직도 여전히 나는 내 감정 알아차리고 돌아보고 다독이는 게 몹시 귀찮은데 남편과 아이의 감정도 살펴보고 그에 맞게 반응해야 하니 몹시 버겁다.
내가 은설이를 얼마나 이뻐하는데... 눈물이 난다.
은설이가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은설이는 커서 아빠랑 결혼하고 엄마는 할머니 되잖아.” 물론 내가 할머니 된다고 했다. 당연히 할머니 되니까. 그냥 둘러댔던 대답이 공식화되어버렸다. ‘은설이가 크면 아빠는 할아버지 된다.’ 했을 때 은설이는 세상 무너지게 울었다. 그래서 그 말은 아직 꺼낼 수가 없다. 뒷감당을 못해서다. ‘엄마는 아빠랑 결혼해봤으니 이제는 은설이랑 아빠랑 결혼할 거야.’ 해서 나는 ‘그럼 그냥 할머니 되야겠다.’라고 했는데 이게 이렇게 아픈 말이 될 줄 몰랐다.
짜증 나. 남편은 저만 좋은 거 하고. 은설이랑 아빠는 짝꿍이고 쌍둥이라 뭐든지 똑같이 해야 한다 하는데, 기분 좋을 땐 맞춰줄 수 있지만 나도 힘들 땐 ‘이걸 언제까지 들어주고 맞춰줘야 하나.’ 답답하기만 하다.
너무 서운하다. 나도 내 선에서는, 할 수 있는 한 은설이한테 잘하려고 하는데, 은설이가 너무 노골적으로 내게 거절을 표현한다. 씁쓸하고 쓸쓸하다. 또 상처 받을까 봐 사랑한단 말도 주저하게 된다.
괜찮은 척, “엄마는 알록달록 할머니가 될 거야.”라고 해보지만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나는 걸 보니
나도 은설이한테 몹시도 사랑받고 싶다는 걸 다시 알게 된다.
치잇
너 어디 한 번 엄마 없이 자 봐.
으름장 놓으며 외박이라도 하고 싶다.
우습지. 아이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엄마가 ‘엄마 좀 사랑해줘’ 하며 구걸하고 있다니. 그러지 말아야지. 다른 누구 아니고 내가 나를 사랑해줘야지. 그래,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