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을 하다니
오늘 분리불안으로 울었다.
다시 말해야겠다. “내가” 분리불안으로 울었다.
퇴근하고 방과후반 친구들과 함께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은설이에게 다가가 부르니 약간 우는 목소리로 “엄마- “하면서 다가와 내 한쪽 다리를 꼬옥 감싸 안는다. 방과후반 선생님이 인상이 좋으시다. “오늘 (방과후반) 처음인데 은설이 울지 않았나요?”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어보니 생글생글 웃으시며 너무 씩씩하게 잘 놀았다고 하셨다. 은설이는 “나 오늘 한 번도 안 울었어!”하고 힘차게 대답한다.
“엄마 엄마, 내가 엄마 얼마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엄청 엄청 많이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유난히 설레게 느껴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전날 밤 약속해둔 바나나킥 과자 봉지를 들고 근처 벤치에 앉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도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하루 종——-일 은설이 생각만 했지.
은설이 보니까 엄마 기분이 너무 좋다.”
은설이가 씩씩하게 하루를 보냈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은설이가 울었더라면 정말 마음이 무거웠을 거다. 아마 하원 할 때 은설이가 울었으면 나도 울었을 것 같다. 여차하면 눈물이 터질 것처럼 그렁그렁하게 은설이를 찾으러 유치원으로 간 거였다.
퇴근길에 운전을 하면서 은설이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커졌다. 정신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일을 배우며 쪼그라든 내 마음이 제일 먼저 찾는 안정감은 은설이었다.
‘은설이 보고 싶다.’ 한마디 읊조렸을 뿐인데 눈물이 나온다,
은설이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정말 우습지. 어찌 보면 역기능 관계가 아닌가. 그렇지만 난 그때 정말 은설이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 작은 가슴에 폭 안겨서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유치원 입학이 늦어져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하던 그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지고, 이제 다시없을 평일 한낮의 한가로운 은설이와의 데이트는 없어진 거라 생각하니 급하게 일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나 자신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은설이의 이 순간은 지금 뿐인데. 지겹다고 중얼거리던 은설이와의 그 버텨내야 했던 시간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소중하게 느껴지다니.
은설이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은설이를 많이 의지했나 보다. 항상 내 곁에 있는 은설이가 가끔은 너무 숨이 막혀왔지만 이렇게 낯선 곳에 덜렁 나 혼자 남겨지니 그 자리가 너무 컸다.
낯선 환경에 놓이면 옆에 꼭 붙어서 부끄럽다고 대답이나 시선을 회피하던 은설이는 나였다. 어른이랍시고 차마 그렇게 대놓고는 못하지만 분주한 순간순간 은설이에게 꼭 붙어있고만 싶었다. 가끔은 ‘대체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거야. 그냥 하는 거야. 그냥.’ 이라며 은설이를 이해하기 어려워 쉬이 다그치던 게 미안해진다. 마음은 똑같다. 낯선 환경에서 자신 없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 굉장히 긴장되고 견디기 버거운 것.
정말 긴장했나 보다. 5년 조금 넘게 쉬던 일을 새로이 시작하는 거였다. 부담감을 덜기 위해 보조교사로 시작해보려고 한 거였는데 처음 해보는 차량 운행 지도에서는 가다 서다 하고 꼬불꼬불 길을 다니는 통에 멀미가 나 토를 했다. 어찌나 긴장되는지 아이들의 눈과 마주쳤을 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미소만 짓기도 했다.
차량 운행은 앞으로 계속 나의 업무가 될 것이기에 멀미약을 준비해야 했다. 은설이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는 야간 진료하는 병원 옆 약국으로 차를 타고 갔다. 오는 길에 은설이는 조용하더니 깊이 잠들어있었다. 차에서 자는 게 이렇게 아쉬운 적이 없었다. 양치질 못한 게 마음에 조금 걸리긴 하지만 제일 아쉬운 건 잠들기 전 잠자리에서 그림책 세 권 읽는 것과, 다 읽은 후 불을 끄고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쓰다듬고 간지럽히고 뽀뽀하고 이내 잠들었을 때의 달라진 숨소리를 듣고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던 일과다.
은설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눕히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은설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은설아.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사랑해. 많이 많이 사랑해.”
가끔 잠결에 대답도 해주는데 많이 고단했나 보다. 내일은 꼭 그림책 읽어줘야지. 마사지도 해줘야지. 남편이 퇴근하고 왔더니 더 눈물이 쏟아진다. 내일은 퉁퉁부은 눈으로 출근을 하겠구나. 차근차근 적응해나가기를. 다른 누구보다 내가. 수고했으니 다독이며 잠을 청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