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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웅 Nov 16. 2018

결혼의 신비

2013년 4월 

오늘 제자 주례를 섰답니다. 참 천지분간 없이 사는 내가 다른 삶의 중대사를 관장하기도 하는구나 생각하니, 스스로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 밤에 주례사를 준비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더랍니다. '결혼의 신비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주례사로 옮겼습니다. 


여러분, 정말 좋은 날입니다. 그리고 상서로운 순간입니다. 먼저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께, 이 상서로운 결혼의 증인으로 참여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결혼이란 신비롭게도 누구에게나 떨리는 일입니다. 여기 신랑 신부가 떨고 있습니다. 양가의 부모님들도 가슴이 벅차실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던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닐 텐데, 남녀의 결혼을 지켜보는 일이란 언제나 떨리는 일입니다.


저는 특별히 더 그렇습니다. 이 결혼이 왜 이렇게 떨리는 결혼인지에 대해 잠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주례 부탁을 받고, 신랑 신부를 따로 만나 본 저는 이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서울대에 함께 다니던 시절부터 사귀었던 오래된 짝입니다. 요즘 보기 드문 ‘장수커플’인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학업과 취업준비를 하면서 서로에게 친구이자, 힘이 되었던 조력자요, 서로의 꿈과 희망에 대한 후원자이기도 한 장수커플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짝이라면, 뭐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까? 분명 서운함과 실망, 토라짐과 서먹한 경험들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래도 좋다고, 다시 한 평생을 살겠다고 결혼을 다짐하다니. 저는 놀랐고, 대견스러웠고, 또한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결혼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사람과 결혼해야 겠다’는 다짐은 놀랍고 신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결혼이 왜 신비롭습니까? 혼자 사는 것보다 둘이 합쳐 사는 게 유리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신비롭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도 경제적 투자모형으로 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롭지는 않습니다. 결혼이란 가정을 만들어 후세를 잊겠다는 생각도 그렇습니다. 별로 신비롭지 않습니다. 이는 사실은 전통과 관습으로 포장되고 강화된, 인간의 본능에 가까울 생각일 것입니다.


저는 결혼이 특별한 이유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불안함을 없지 않지만, 기꺼이 “짝 지워진 운명”을 선택하는 자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기꺼이 둘이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결혼인 것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각각의 독신생활보다 일반적으로 유리하지만, 내가 하려는 이 결혼이 꼭 유리하리는 법은 없다는 게 결혼의 함정입니다. 결혼을 해야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은 대체로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득을 보려고, 유리하게 살려고, 결혼한다고 해서 잘 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예상하면서도 기꺼이 “짝 지워진 운명”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은 결국 잘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랑에 기초한 결심이 유리한 인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 역은 참이 아닙니다. 즉 이득을 보려고 결혼해 봐야 사랑이 깊어지지 않습니다. 부부의 신뢰가 풍요로움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그 역은 참이 아닙니다. 풍요롭다고 해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의 신비로움이란 이런 종류의 것입니다.


저는 류00군과 이00양을 만난 후 주례사를 준비할 때, 이 오래된 짝의 다짐에 대해 생각하면서 바로 이런 생각에 즐거웠습니다.


저는 비록 교수로 가르치고 있지만, 결혼에 대해서 신랑신부에게 따로 가르칠 것이 별로 없습니다. 현명하고도 사려깊은 류00군과 이00양이 “짝 지워진 운명”을 선택하면서 이미 염려하고 다짐한 바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만 선생이 아니라, 결혼의 선배로서 한 가지 말씀만 더하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결혼을 다짐했을 무렵 제 어머니께서 제게 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결혼에 대해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한 번쯤은 결혼 자체에 대해 모진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려 보십시오. 부모님이 나를 부를 때 음성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인내하시고, 견뎌 내십시오.


오래된 결혼 중에 곡절이 없는 결혼이 없습니다. (이 장수커플도 잘 알 것닙니다.) 그래도 견디어 내고, 자식을 보고, 보람 있게 길러서, 이렇게 다시 새로운 결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또 다른 결혼의 신비’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바로 그런 결혼생활의 산 증인인 것입니다. 부모님의 그 따듯하고 음성과 부드러운 시선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오늘은 정말 좋은 날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의 다짐이 이루어진 신비로운 순간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축복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부부는 과연 축복이 필요합니다. 결혼은 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약간의 질투심 속에서 이 두 사람은 더욱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풍요로움은 모두에게 다시 되돌아 갈 겁니다. 잘 사는 부부는 모두에게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어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영향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인생이 신비로운 이유 중의 하나가 결혼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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