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의 진실
-정담훈
깊은 새벽, 어둠 속 방 안.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나는 또 한 번 화면을 새로고침했다.
많은 시간과 마음을 들여 쓴 게시글.
하지만 '좋아요'는 열몇 개가 전부였다.
실망한 내 모습이 우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우스움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나는 왜 이렇게 반응에 흔들리는 걸까.
이 글은 남을 분석하려는 글이 아니다.
나 역시 ‘좋아요’에 무너지고, 그 숫자에 위로받았던 사람이다.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꺼내 보이고 싶었다.
당신 역시, 그런 순간이 있었을 테니까.
우리는 왜 ‘인정’을 갈망할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칭찬을 원했다.
“잘했어.”
그 짧은 말은 애정이었고, 보호였고, 존재에 대한 승인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배웠다.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걸.
SNS 시대에 들어서며 그 인정은 ‘좋아요’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트 하나면, 누군가에게
“당신,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단순한 클릭 하나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할 만큼 강력해졌다.
더 많이 받을수록, 나는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고
반응이 없을수록 내 존재가 흐려지는 것 같았다.
우리가 ‘좋아요’에 열광하는 이유는,
사실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서다.
‘좋아요’는 진실이 아니라 착시다
SNS에 올리는 우리의 모습은 늘 정제되어 있다.
잘 나온 사진, 조심스러운 문장, 가볍게 포장된 감정.
울고 있는 순간도, 밝은 필터로 덮는다.
진짜 감정은 너무 무겁고, 때론 너무 날 것이라
올리는 게 두려워진다.
나도 그랬다.
진심은 자주 검열됐다.
힘들었던 날도 괜찮은 척했고,
마음의 속은 비워두고 껍데기만 내보였다.
때로는 울분조차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만 다듬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꾸며낸 감정일수록 반응은 더 컸다.
진짜 마음은 외면당하고,
잘 포장된 슬픔만이 사랑받았다.
그때 알았다.
‘좋아요’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에 대한 반응이라는 걸.
왜 우리는 새로고침을 멈추지 못할까?
좋아요 숫자는 감정의 리모컨이 된다.
기분을 띄우기도 하고, 꺼뜨리기도 한다.
문제는, 그 리모컨이 내 손에 없다는 것이다.
확신이 없을 때, 사람은 타인의 반응에 의지한다.
‘지금의 나는 괜찮은가?’
‘내가 한 말, 누군가는 알아봐 줬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숫자로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화면을 내리고, 또 내린다.
지금 막 누군가 반응해 줬을까.
내 말에 공감한 사람이 있을까.
새로고침은 질문이고, 좋아요는 대답이다.
그 기대가 반복되고, 어느새 습관이 되고,
마침내는 중독이 된다.
진짜 ‘좋아요’는 숫자가 아니다
좋아요에 휘둘린다는 건,
아직 내 가치를 내 안에서 찾지 못했다는 증거다.
나도 그랬다.
지금도, 가끔은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좋아요는 숫자에 있지 않다.
내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냈느냐,
어떤 태도로 견뎌냈느냐에 달려 있다.
누군가의 반응 없이도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 잘 살았어.
이 하루를 놓지 않고 끝까지 왔구나.”
그 말이, 진짜 좋아요다.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랬다면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좋아요에 마음이 흔들렸고,
반응이 없다는 이유로 글을 지운 적도 있다.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고,
내가 무의미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좋아요는 숫자가 아니라,
삶의 무게와 진심의 밀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당신도 그랬을 것이다.
기다렸던 반응이 없어 마음이 다쳤고,
혼자라는 생각에 깊이 가라앉았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누군가의 클릭 없이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하루를 버텨낸 당신에게,
나는 진심으로 좋아요를 누릅니다.
어떤 숫자보다 무겁고,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