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이후,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묻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무너졌을까?”
삶은 종종, 우리가 세운 지도 바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좌표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결혼 후, 첫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매달 적자가 반복됐다.
월세조차 내지 못해 상가 보증금을 까먹으며 버텼던 날도 있었다.
딸아이 기저귀 하나 살 돈이 없어,
몰래 울던 밤도 있었고,
외식 한 번 편하게 할 수 없던 생활고에
마음까지 시들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삶이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긴 필름 같다.
나는 그 필름 속에서 유난히 어두운 장면만 반복되는 듯한 나날을 살았다.
사업이 실패한 뒤,
‘사는 게 버겁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하루하루 실감하며 살았다.
나는 그렇게, 조용히 무너졌다.
예고도 없이, 말도 없이.
언제부턴가 숨 쉬는 법을 잊었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지는 느낌이었다.
계획은 부서졌고, 감정은 굳어갔고,
나는 매일 조금씩 고장 났다.
그런데 묻는 사람은 없었다.
“괜찮냐”는 말,
“버티고 있냐”는 말,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은 척’하는 사람에게만 너그러웠다.
고장 난 마음에도 붕대를 감을 시간이 필요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향해
“다 그렇게 사는 거지”라며 쉽게 말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남들이 말하는 ‘그렇게 사는 삶’은, 나에겐 너무 잔인한 기준이었다.
버틴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지만, 동시에 아직 무너지지 못한 징표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채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밤마다 감정을 글로 꿰매기 시작했다.
낮에는 자영업자가 되어 수십 명의 손님을 응대하고,
밤에는 고장 난 내 마음을 붙들고 앉아 조용히 기록했다.
말없이 버티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일상은 나를 조용히 집어삼켰고,
나는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단어를 쥐고 있었다.
글을 쓴다는 건, 무너지는 자신에게 밧줄을 던지는 일이었다.
나 하나 고치는 것도 벅찬데,
인생은 언제나 더 큰 무게를 던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 다행이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들은 모른다.
내가 무너질 수 없었던 건
단지 내 인생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족은 사랑이지만, 때로는 무게이기도 했다.
지켜야 한다는 책임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지만, 동시에 짓누르기도 했다.
사랑이란, 내가 온전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수리가 끝나야, 타인을 지키는 공구함이 될 수 있으니까.
이 글은 거창한 성공담도,
눈물로 호소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쓰러지고도 다시 일어서려 했던
한 남자의 기록일 뿐이다.
나는 매일 무너졌지만,
매일 다시 고치려 애썼다.
아직, 나는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수리 중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제 당신에게 건네고자 한다.
이건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나는 아직, 나를 고치는 중이다.
당신도, 고장 난 채로 살아가고 있진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