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유로
✒️ 정담훈 (Jung Dam-Hoon)
처음엔 다들 그랬다.
사랑이니까, 이해하라고.
사랑이니까, 좀 참으라고.
사랑이니까, 상처도 괜찮다고.
그 말들은
마치 오래된 수건 같았다.
젖어 있는지 마른 건지,
털어도 뭔가 묻어 나오는,
그런 감정의 헝겊.
나는 사랑이란 이유로
많은 걸 견뎠다.
무심함도, 말없는 침묵도,
다시 반복된 약속도.
그런데 이상하지.
사랑이라서 괜찮았던 게
언제부턴가
사랑이기 때문에 더 아픈 일이 되었다.
기댔던 사람에게
등을 돌리는 법을 배우는 건
아주 천천히,
숨 쉬는 속도로 무너지는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게 아니라,
돌이켜 봐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아프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건 회복이 아니라,
눈치 보며 걷는 감정의 목발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나를 위로했다.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
그 모든 무너짐 속에서
어떻게든 스스로를 붙들고 있었다는 걸
조용히 인정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끝까지 붙드는 일보다
자기 자신을 놓치지 않는 일이 먼저라는 걸.
나는 지금,
다시 나로 서는 중이다.
사랑이란 이유로 무너졌던 그 자리에
이제 나의 말들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