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담훈 (Jung Dam-Hoon)
사람을 만나면, 말보다 눈이 먼저 지친다.
표정을 짓는 건 얼굴이 아니라 마음이고,
마음은 하루에 몇 번씩 쓸어 담아야 제 모양이 된다.
나는 사람 속에서 자주 뒤틀렸다.
말의 맥이 어긋나고, 웃음의 온도가 다르면
마치 셔츠 단추 하나가 어긋난 것처럼
하루가 계속 불편했다.
그래서 멀어진다.
조금씩,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여름을 향해 떠날 때,
나는 안쪽으로 접힌다.
모래 대신 생각을 밟고,
물결 대신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떠나고 싶다는 말 대신,
나는 산꼭대기를 꺼낸다.
고요가 바람처럼 깃드는 자리,
이름도 없고, 길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나를 책처럼 펼쳐 읽는다.
와이파이는 없지만,
감정엔 신호가 잡힌다.
문장처럼 쌓여 있던 생각들이
조용히 정렬되기 시작한다.
혼자가 외롭지 않은 건,
그 자리에선 비로소 나와 화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끼어들지 않는 말 없는 대화,
그게 나를 숨 쉬게 한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까지 혼자 있어야 해?”
나는 대답 대신 미소 짓는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며 고개 끄덕인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지만, 바람은 그 곁을 떠난 적이 없다.
혼자 있는 것과 버려진 것은 다르다.
고립은 부서짐이 아니라,
조각난 감정을 천천히 붙이는 작업이다.
나는 아프지 않다.
오히려 지금, 살아 있는 중이다.
세상이 낸 상처 위에
내가 나를 덧발라주는 중이다.
그러니, 여름의 소란에 초대받지 못한 당신이여.
아무도 모르는 산꼭대기에서
당신이 조용히 책을 펼치고 있다면,
그건 도망이 아니다.
그건, 가장 깊은 여행 중이라는 뜻이다.
✒️ 정담훈 (Jung Dam-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