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나라는 빈자리
모든 것을 잃고 난 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누구였는지를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나를 이루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로
나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
누군가의 곁에 있다는 위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안도,
어떤 위치에 놓여 있다는 자기 위안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없어진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불안이
늘 나를 휘감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쥐고 있던 것을 놓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쥐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저 꼭 쥐고 있어야 살아지는 삶이라고 믿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모두 흘려보내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텅 빈 나’를 마주했다.
그때의 공허는
모래알처럼 스미는 게 아니라,
어두운 물처럼 깊은 곳까지 차오르는 것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침묵 안에는
내가 몰랐던 어떤 조용한 움직임이 있었다.
아무도 만지지 않았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는데도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나.
그것은
부서지지도, 지워지지도 않는,
매우 느리고도 단단한 형태의 나였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사람은
붙잡은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이후에도 남는 것으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걸.
아마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내 것’이라 부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볼 수 있는 이름,
누군가를 위해 내보인 웃음,
언제든 꺼내 보일 수 있는 자격,
내가 나에게 속이기 위해 만든 거짓된 확신들.
그런 것들을 움켜쥔 채 살아가면서도
정작 그 무게가 우리를 얼마나 지치게 만들고 있었는지를
눈치채지 못한 채.
나는 하나씩 내려놓았다.
손에서 떨어진 건
그저 물건이나 관계가 아니었다.
함께 놓아버린 건
내가 믿고 의지하던
‘나라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그제야 드러났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나,
채워지지 않아도 충분한 나,
무너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나.
텅 빈 내가 나였다는 것은
그 어떤 외침보다 조용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건,
무언가를 잘하고 있다는 증명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평화로웠다.
나는 비로소,
조금 안심했다.
사라져도 괜찮다고,
남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남아 있지 않아도
내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내 존재는
어떤 높이에도,
어떤 증거에도 기대지 않았고,
무너진 자리 위에도
조용히 남아 있었다.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한때
나를 몰랐고,
나를 지나쳤고,
나를 너무 많은 것들로 둘러싸
보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후에야
정말로,
나는 나를 만났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자리에
비로소 내가 있었다.
-정담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