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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5. 2022

[에세이]가난은 쓴맛이 난다

어젯밤 탁자 위 엉성하게 놓았던 아이폰이 몸을 부르르 떨며 존재감을 알렸다.

오전 10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 8월의 끈적한 태양이 고개를 쳐들고 3평 남짓의 작은 옥탑을 불태우기도 전이었다.


‘웅, 웅’. 최신폰을 두 번이나 건너뛴 철 지난 아이폰 X에 화면을 꽉 채운 ‘1588-XXXX’가 선명했다.

“어디지? 연락 올 곳이 없는데”


혼잣말을 삼기고 나서야 눈을 다시 비비벼 전화를 받았다.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 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XXX님의 학자금 대출 이자 미납으로 00XX 년도 2학기 학자금 대출 신청은 반려되었습니다.”

“네? 그럴 리가 없는대요, 아 제가 우선 한번 다시 알아볼게요. 아.. 이상하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동네 형에게 장난을 걸고 도망치다 짱돌로 눈을 맞은 적이 있었다. 눈앞이 핑핑 돌며 별이 보였다. 수십 분 동안 혈관이 터져 피는 망막을 가렸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시골살이에, 엄마에게 걱정을 끼칠 수 없었다. 화인쿨을 하나 뜯어먹고서는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동네 형도 별일 없겠거니 꽁무니를 뺐다.     


며칠이 지나 집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눈앞에서 갑자기 검은색 물감이 눈을 덮쳤다. 그리고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한 시 간 반을 달려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마터면 한쪽 눈을 다시 보지 못할 뻔했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그리고 나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부터 ‘캄캄한’ 그 무엇, 눈을 가리는 어둠은 나에게 있어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거대한 괴물을 마주한 실체적 공포에 가까웠다.          

 

잊고 있었던, 어둠이 다가오는 듯했다. 없는 살림에 재수를 했고, 서울로 상경했다. 일류대학은 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부득부득 인 서울행을 고집했다. 지역에서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도 있었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했다. 일 년을 더 공부해놓고서는 어떻게 지방대를 갈쏘냐. 아집이었다. 고통의 서사가 시작되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나는 불알 두 쪽을 덜렁거리며 서울행에 몸을 실었다.      

첫해 일 년은 그럭저럭 버텼다. 친척집에서 6개월 반지한 고시원에서 6개월. 친척이 살던 이태원 자락은 서울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으나, 변덕스러운 친척을 맞추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끼니를 제때 챙겨 먹기도 눈치가 보였고,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날엔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름방학을 지날 때 즈음, 이사를 간다고 해 잘됐다 싶어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택한 곳은 고시원이었다. 제법 널찍한 반지하 고시원 방에는 작은 냉장고와 책상, 세면대가 있었다. 물론 샤워실은 공용을 써야 했다. 소리에 민감한 옆방 복학생은 10시 넘은 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벽을 ‘쾅, 쾅’ 쳐댔다. 

소심하게 몇 번 맞받아 쳤더니 방문을 두드렸다. 죄송하다고 나지막하게 읇조리고서야 잠깐의 소동을 끝났다.          

도망치듯 군대를 다녀왔지만, 생활이 나아질 리 만무했다. 학자금 대출, 생활비 대출, 아르바이트비를 끌어모았다. 보증금 500에 25만 원짜리 월세방. 에어컨, 세탁기가 갖춰져 있었다. 물론 집주인이 가벽을 덧대어 만든 무허가 건물이었지만, 반지하 방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바퀴벌레도 없었고, 예민한 옆방 X도 없었다. 다만 새벽녘 샤워하며 노래부를 집주인 아들놈은 언젠간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다. 제발 고해 좀 그만 부르라고. 다양한 노래라도 불러달라고.      


작은 옥탑 보금자리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알바를 시작했고, 대외활동도 빼놓지 않았다. 한자 자격증을 땄다. 이년 남짓 남은 대학을 잘 마치고 나면 월 250만 원 아니 300만 원 월급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다. 그만큼 고생했으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몇 번이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난 뒤에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상황을 설명했고, 당황했던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내야 할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에 어떤 것이 어떤 돈인지, 어디가 중요한 돈인지 구별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빗물에 젖은 실타래처럼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전화기를 책상 위에 내려뒀다. 핸드폰에는 다시 ‘엄마’가 찍혔다. 다시 받았다.

“미안해 아들, 엄마가 챙긴다는 게 깜빡했네. 어떡해? 다른 방법 있어?” 

“응 다른 대출 있으니까 찾아볼게 괜찮아. 이자율이 좀 다르긴 할 텐데 지금 신청하면 2학기 시작하기 전에 나올 거야. 괜찮아.”


통화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목소리는 눈물을 반쯤 머금고 있었다. 울먹임을 간신히 참고서야 전화를 끊었고,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목구멍에 차올랐던 눈물까지도 분출하듯 토해냈다.

“왜, 왜,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라고 입 밖으로 큰소리도 내지 못한 채 목구멍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옆집 아들은 코를 흥얼거리며, 야다의 진혼을 열창하고 있었다. 


“그래 개새끼야, 오늘은 고해는 아니네”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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