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상욱 Sep 26. 2020

사각 보존용기와 원형 보존용기의 차이점

사각형과 원형의 구조 차이


 대학원 때 배운 인테리어 디자인 수업 중 특별 초청된 강사님이 한국 업장에서는 일본 업장만큼 공간 활용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단순한 평면적인 공간뿐 아니라 높이 등의 활용에서 많이 약하며, 음식물을 담는 용기를 사각이 아닌 원형으로 많이 사용하여 잉여 공간이 많다고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인 수업이었고 이후 업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용기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 당시 일하는 업장에서는 bain marie round라고 불리는 원형용기 반에 six(nine) pan이라 불리는 사각용기 반 정도가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별생각 없이 ‘아 진짜 한국은 공간 활용 능력이 일본에 비해 약한가 보구나. 사각용기를 사용하면 되는데, 굳이 비효율적으로 원형용기를 50%나 사용하는군.’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생겼다. ‘그런데 왜 원형용기를 사용하는 거지? 공간 활용에 좋지도 못한데?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문 말이다. 이 의문을 도저히 풀 수가 없었고 이유를 설명해 주는 사람들도 없었다.

사각 nine pan을 이용하여 잘 준비된 재료들은 마음의 편안함을 준다.

 나는 일본에 가본 적도 없고 그곳의 주방 구조도 모른다. 실제 기물을 이용한 공간 활용이 어떠한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레스토랑에서 원형 용기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공간 낭비가 아닌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사각용기와 원형용기의 장단점


결론만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사각용기는 공간의 활용성에 장점이 있고 원형용기는 보관 시 안정성이 증가한다는 장점이 있다. 사각용기의 장점은 공간 활용이다. 냉장고 정리를 할 때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기도 좋고 준비된 재료를 펼치면 오밀조밀 보기도 좋다. 하지만 재료를 보관할 때 안정성이 떨어진다.

사각용기는 잔여공간 없이 수납하기에 좋다


 원형용기는 소위 ‘dead space(죽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공간 활용은 좋지 못하지만 음식이 담겼을 시 안정성이 좋다. 어지간한 양의 액체가 출렁거리면서 움직여도 쓰러질까 봐 불안하지가 않다.

원형의 보관용기는 죽는 공간이 생겨 공간적 효율이 좋지 못하다. 하지만 안정성이 뛰어나다.




안정성의 차이에 대한 이론과 실험


 공간 활용은 이해가 잘 되는데 안정성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어째서 안정성이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것은 원의 특징 때문이다. 원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모양이 동일하기 때문에 받는 힘을 견디는 힘도 일정하여 안정적이다. 하지만 사각은 네 군대에서 들어오는 힘에는 약하지만 그 외의 힘에는 더 강하게 버틴다.


원형은 안정적이게 힘을 받지만 사각은 불안정하게 힘을 받는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험을 한번 해보자. 동일한 용량의 액체를 넣은 각각의 용기를 같은 힘으로 밀어서 실험해보면 원형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안 하지만 사각 팬은 옆으로 엎어질 듯 들썩들썩 거린다. 특정 방향으로 힘을 가할 경우 사각형이 훨씬 불안정하다.


동일한 힘으로 밀었는데 원형은 꿈쩍안하고 사각은 비틀거린다.


 이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 ‘모든 컵이 원형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디자인, 제조과정, 가격 등 내가 모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안정성이 그중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요한 고객이나 운명적인 상대를 만난 일생일대의 상황에서 무참하게 쓰러지는 이쁜 사각 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사각팬의 안정성이 더 낮은 이유


주방에서 사용하는 사각팬의 사이드 부분을 유심히 보면 각진 형태가 아니라 유선형 형태이다. 우유팩 같이 직각으로 모서리를 만들면 안정성은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음식물 보관 용기의 각을 뾰족하게 제작하면 일하는 직원이 다칠 수 있다. 거기에다 뾰족한 사이드에 음식물이 끼어버리던가 심하면 녹이 슬거나 찌그러짐등의 내구성에 문제가 다수 생기기 때문에 유선형으로 제작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유선형의 모서리는 사각팬의 안정성을 악화시켜 더욱 쉽사리 쓰러지게 만든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사각용기의 사이드 부분은 직각이 아닌 유선형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안정성 측면에서는 좋지 못하다.



용기에 따른 보관재료의 차이


 사각 용기에 보관하는 식자재가 불안정한 액체류가 아닌 안정된 고체 상태라면 고정된 무게 중심 때문에 쓰러질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액체의 경우 이동을 한다거나 하여 무게중심이 한 방향으로 쏠리는 경우 순간적으로 대참사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원형용기는 액체의 경우도 중앙으로 무게중심이 쉽게 잡힌다. 그래서 더 안정적인 수납이 가능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업장에서는 사각보존용기는 고체류나 적당한 양의 액체를 담을 때(안정적인 식재료) 사용하고, 원형 용기는 액체로 (불안정한 식재료) 이루어져 있는 육수 등의 재료를 대량으로 담을 때 사용한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1리터 이하의 제품은 사각을 자주 활용하고 그 이상 용량의 원형통은 일반적으로 육수(소스) 보관용으로만 사용을 한다.


액체는 무게중심이 항상 움직임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원형용기로 담는 것이 좋다.


 가끔 냉장고를 이용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육수나 소스 등이 엎어져 냉장고 대청소를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곳곳을 닦아내고 바닥까지 물청소해야 해서 30분가량 걸린다. 열에 아홉은 사각 팬을 사용하여 액체류를 보관한 경우다. 보관용기 한번 잘못 골랐다고 겪는 대가라기에는 너무 마음 아프다. 집의 냉장고에 육개장을 보관했는데 엎어졌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대참사인지 공감이 쉽게 될 것이다.



모든 기물 사용에는 이유가 있다


 이런 단순한 기물 하나하나 사용하는데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기물도 부하직원들에게 육수 담아와라 이러면 원형, 고기 자투리 담아봐라 이럼 사각으로 알아서 담아온다. 경험이란 무서워서 자신이 왜 그 기물을 고르는 이유를 모르고 설명을 할 수도 없지만 ‘무엇인가’가 더 편하다고 느끼기에 특정 기물을 고르는 것이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대학원 때 강의를 하신 강사님을 우연히라도 다시 만난다면 분명히 말해드리고 싶다. 한국 요리사들이 공간 활용은 못했을지 모르지만 더 안전하게 일하는 것은 확실하다는 점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케아 마늘 다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