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의 작약, 알리움(누군가의 정원에서)

2022. 5. 5.

by Elena

남의 정원에 핀 작약은 거의 처음에 가깝게 보는 것 같아요. 아. 아니 그동안은 관심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동안 무심결 지나간 남의 화단에 고운 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수줍게 피어나는 꽃잎 결마다 가지는 의미가 남다른데, 심지어, 내 아이의 이쁨 또한 이리 모르고 지나가는 순간도 얼마나 많았을까요..?

돈 주고 처음 사본 알리움을 보고, 신기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른 이의 정원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배가 됩니다.

이 아이가 저리 자란 것이니, 어찌 기특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듬성듬성, 예쁘게 자라날까, 고민하며 들여다본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아이의 울퉁불퉁함도, 저의 불안이 더 예민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사회 통념을 무시 못하는 보통 사람인 저는 매 순간 고민이 됩니다.


그저 이쁘게만 보아도 부족한 시간인데, 자꾸만 혹시나 모르는 그 “불안함”으로 아이를 채근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분명히 지금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말이지요..


며칠 전 사무실에서 피우지 못하고 있는 작약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친 관심도, 지나친 개입도 득 보단 실이라는 생각을요.


작약을 잘 피우려면, 마사지도 해주고, 열탕도 해주라기에 조물조물 마사지도 해주고, 주말이나 휴일이 끼어 매일은 아니었지만 열탕도 매번 해주고, 힘들어하면 겉잎도 살짝 열어주라기에, 제대로 이해를 못 한 탓인지 저렇게 겉잎을 열어주었는데 여전히 꽃이 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안달 난 내 마음이 제 속도로 피고 싶은 녀석을 채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정도쯤이면, OO 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결국, 너무 지켜보기만 해도, 너무 앞서 가기만 해도 안 되는 거다 싶은데 , 아이를 키울 때도 살짝 남의 아이 보듯, 적당한 개입과 적당한 관심으로 대해야지 하는데 지나친 방임형 부모는 늘 이렇게 혼자 조바심이 납니다.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 엄마라서, 오히려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아이에게 맞춤형 잔소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뭐든 도통 “적당히”라는 선택지가 없는 저는 그게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린이날, 나가기 귀찮아하는 아이와 어린이날이니까 그래도 우리 함께 어디라도 다녀오자는 엄마의 애절한 부탁으로 잠시 다녀온 나들이. 솔직히 예전 같으면 제 에너지가 부족해서 나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고마워하며 집에서 쉬었을 겁니다. 나는 나가자고 얘길 했고, 아이는 안 간다고 답을 한 거니 “적당한” 타협을 한 거라며 말이죠.


하지만, 살아보니 때로는 좀 더 채근하여야 할 때도 있고, 아이의 유년에 제가 더 부지런히 채워줘야 할 추억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제의 결정은 “적당한” 추억 하나쯤 선물하기 위한 적절한 결정을 한 셈이죠.

아이는 돌아오는 길 잠시 들린 카페 정원에서 2바퀴나 달리기를 했습니다. 정원 곳곳에 길로 만들어진 돌다리를 밟으면서요.

하루 중 가장 신나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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