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로 살어리랏다

애비가 자식에게

by 동사로 살어리랏다

삶은 동사다

고단한 삶을 고정시켜 안정되기를 바라는 우리네 바람과는 달리, 삶은 움직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단순한 진리가 내게 오기까지 꽤 많은 인연들이 오갔다.


나무가 ‘되기 위해’ 씨앗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된 것들은 또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영원히 무엇이 안 되기 위해, 끝내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 때문에 생을 망쳐서는 안 된다.


이성복 시인의 압축된 내공이 표현된 아포리즘이다. 명사적 삶을 살지 마라, 삶은 특정 목적을 위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찰나 순간이다, 찰나 순간들의 흐름이다. 물 위를 통통 튀어 떠가는 물수제비처럼.




수많은 거인들이 있었다

윌리엄 수도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수했다. “그래요, 우리는 난쟁이들입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는 난쟁이는 난쟁이이되, 거인의 무등을 탄 난쟁이랍니다. 우리는 작지만, 그래도 때로는 거인들보다 더 먼 곳을 내다보기도 한답니다.”


왜소해 보이기만 하는 난쟁이. 그러나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장미의 이름』에서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의 입을 통해 그 난쟁이가 거인의 무등을 타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나 또한 많은 거인들의 무등에 올라 탈 기회가 있었다. 기회를 준 수많은 거인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내 왜 모르랴만

동사로 살기를 바라는 난쟁이의 글과 사진들의 묶음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또 다른 사막임을 내 왜 모르랴만

신경림 「사막」 중


마침표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쉼표다, 혹은 숨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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