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과 반전의 순간』의 무등에 올라타서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은 순간은 거의 없다. 어떤 순간, 어떤 공간에도 음악은 유령처럼 존재하며,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강헌, 『전복과 반전의 순간』
오직 모를 뿐
소설가의 꿈을 안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들어갔지만 재능 없음만 발견하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같은 대학 음악대학원을 들어갔으나 대학원에서 ‘좋아하는 거랑 밥벌이는 다르다’는 걸 배웠다. 아무 연고 없는 영화판에 뛰어들어 만들고 썼다. TV 시나리오도 썼다. 음악 평론을 쓰고 강의했다. 술과 음식을 숭배하다가 술과 음식 때문에 생사를 헤매게 된 뒤 술은 떠나보내고 음식만 곁에 둔 채 음식 메뉴 개발, 음식 팟캐스트, 음식 라디오 진행을 했다. 축구, 와인 등에 심취해 강의도 했고, 쓰러져 생사를 헤맨 후 명리학을 공부하고 썼다.
작가가 자신의 인생행로를 엿보고 책 제목에 ‘전복과 반전’을 넣었을 리는 만무하다. 어쨌든 책의 제목처럼 전복과 반전의 연속이다. 그런데 저 하나하나가 뜻하지 않게 저절로 이루어진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
정석주 <대추 한 알>
시인은 노래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태풍, 천둥, 벼락이 키운 대추 한 알을. 우리는 모를 뿐 대추 한 알 안에는 무서리, 땡볕, 초승달이 수 없이 많이 들어 있음을. 대추는 대추 혼자서 저절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그렇다면 대추를 있게 했던 태풍은 또 어떤가? 천둥은? 무서리, 땡볕은?
그것이 그것이기 위해서는 그것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이 있어 그것이 되는 것이다. 대추 한 알에는 일체 모든 것들이 필연적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오직 모를 뿐이다.
오직 모를 뿐. 분명 비범했던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다. 나는 ‘오도송’이라 본다. 범부 중생의 짧은 헤아림을 용서하소서 – ‘모를 뿐, 우연은 없다. 일체 연기(緣起)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우리가 모르기에 우연이라 치부했던, 우연 같은 필연의 이야기다. 숨겨져 있던 부딪힘과 어긋남의 이야기들이다. 작가는 역사의 뒤안길을 뒤져 역사를 뒤바꾼 전복과 반전의 순간들을 찾아 탁월한 필력으로 신명 나게 풀어낸다.
글을 쓰려면 강헌처럼
음악 이야기를 토대로 어원, 민족, 인종, 국가, 정치, 전쟁, 경제, 풍속, 영화, 인물 등을 장르 구별 없이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마치 그 시대, 그 상황을 생생하게 생중계하는 듯하다.
1947년에 만들어진 <뉴올리언스>란 흑백영화가 있다. 거기에 루이 암스트롱(Louis Daniel Armstrong)과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가 나오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항구 도시에서 시작하는데, 배가 도착하면 승객, 선원, 군인 등등이 우르르 내린다. 이 새로운 도시에서 욕망을 찾아 나선 젊은 남자들이다. 스토리빌 – 뉴올리언스 매춘 밀집 지역 – 입장에서는 고객들인 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스토리빌은 항구와 떨어진 안쪽에 있었다. 항구에서 스토리빌에 있는 업소까지 이들을 어떻게 데려가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루이 암스트롱 같은 이른바 ‘삐끼’들이 배가 도착할 때부터 계속 부둣가에서 연주를 한다. 각 업소 별로 항구 앞에서 연주들이 연주를 하는 것이다. 배에서 내린 젊은이들이 마음에 드는 악대 앞에 모이면 그들을 끌고 스토리빌의 자기 업소까지 안내한다.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그랬다.
재즈의 발생 기원을 이야기하던 도중, 1900년대 초 미국 뉴올리언스의 항구 풍속을 그린 영화 <뉴올리언스>를 소개한다. 액자구성 방식을 이용하여 극적 흥미를 살리면서도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 내가 1900년대 초 미국 미시시피강 하구의 한 항구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루이 암스트롱의 연주를 직접 듣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 제일 증오하는 가치는 ‘나인 투 파이브’였다.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삶을 증오했다. 히피 패션의 상징이 무엇인가. 바로 장발이다. 잘 생각해보자. 엘비스 프레슬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리고 비틀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머리 스타일은 어땠는가. 모두 짧았다. 그런데 로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장발이듯, 비틀스 역시 1965년부터 머리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곧 “우린 히피야” 또는 “우리는 히피즘을 선봉 해”란 뜻이었다. 1990년대쯤 내가 홍대 근처에서 머리를 기르고 록하는 친구들한테 “너 왜 머리 기르니?”라고 물어보면, “폼 나잖아요!”라고만 대답했다. 그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대답이다. 로커 이전에 히피들이 머리를 길렀던 이유는 “나는 ‘나인 투 파이브’의 삶을 반대한다”라는 것의 상징이었다. 이 당시 자유분방해 보이는 미국에서도 머리를 길게 기르며 직장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자르고, 정장을 하고, 넥타이를 매고 나가야 했다. 그러므로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단순히 멋으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나는 고도의 자본주의가 규정하고 있는 나인 투 파이브의 삶을 반대, 거부합니다!”라는 메시지였다.
『선데이 서울』 역시 대부분 그저 여배우들이 수영복이나 입고 나오는 그런 잡지로 알고 있다. 그런데 1968년 『선데이 서울』이 처음 나왔을 때, 그 창간호에는 소설가 김승옥의 글이 실렸다. 초창기인 1973년까지 이청준, 김승옥 같은 작가들이 그곳에 연재를 했다. 그 밖에도 중요한 문화적 평론들, 격조 있는 글들이 벌거벗은 여배우들 사이사이에 나란히 게재되었다. 굉장한 문화 잡지였다. 새로운 대중문화의 트렌드였다. 인간의 욕망, 특히 수컷들의 욕망을 인정해 주자. 이것은 시장의 욕망이니깐, 팔리니깐 인정해주자. 수컷들의 욕망을 가졌다고 해서 그 인간 자체가 바보는 아니지 않은가. 바보가 아니니 음악도 좀 듣고, 소설도 좀 읽고, 세상에 대해서도 좀 안다고 하는 거였다. 쉽게 말해서, 『딴지일보』의 시초쯤일 것 같다. 이런 문화적 트렌드를 반영한 흐름의 첫 번째 버전이 바로 『선데이 서울』이었다. 여기에는 굉장히 비판적인 글들은 물론 그 당시 통념과 금기에서 벗어나는 글들도 많이 실렸다.
위의 인용문은 로큰롤 혁명 이후 훨씬 고도화된 새로운 움직임인 ‘히피즘’을 소개한 글이며, 아래 인용문은 미국의 『플레이보이』를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를 석권했던 도색잡지, 엘로우 저널리즘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대중문화 잡지 『선데이 서울』이 우리나라 록 밴드 문화의 탄생에 기여한 일화를 소개하기 위한 글의 일부다.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소위 ‘똥폼’이 없지만 아우라 뿜 뿜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리드미컬하게 넘어서 본 자의 리드미컬한 글쓰기다. 이런 글들이 도처에 넘쳐난다. 삶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전환한 진정 공부한 흔적이다. 공부하려면 강헌처럼.
음악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음악을 만든다
망상과 공상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 열정과 사랑으로 인한 구원, 책에는 드라마틱한 운명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음악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음악을 만드는 전복과 반전의 운명 이야기들.
그런데 베토벤의 기대와 달리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은 첫 번째 전투에서 이기긴 했지만, 외각에만 진주하고 빈 내부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자 빈 내부에서 적과 내통하는 자가 있는지 단속이 심해졌다.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 앞에 써둔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적의 내통자로 몰릴 판이었다. 그래서 베토벤은 할 수 없이 교향곡의 제목을 에로이카로 바꿨다.
익히 아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 E플랫 장조 Op.55》의 제목에 얽힌 반전 이야기다. 더 큰 물에 진출하고 싶은 야심을 가졌던 베토벤은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바치고 싶었다. 최고 권력자에게 아부를 해서라도 야심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은 교향곡의 원래 제목을 ‘보나파트르’로 지어 헌정하려 했으나, 희망과는 달리 불리한 상황에 처해지자 가차 없이 나폴레옹의 이름을 버리고 잽싸게 ‘에로이카(영웅)’로 갈아탄다. 반전의 역사이자, 역사가 음악을 만든 케이스.
표면적으로 단순 명료해 보인다 하더라도 함부로 예단할 일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이나 결과가 있기까지 상상을 뛰어넘는 얽힘과 설킴이 있었던 것이다. 「영웅」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이 보이는가? 전쟁이 있었고, 전쟁을 이끈 장수가 있었고, 장수의 말이 있었고, 말이 먹었던 풀이 있었고, 시골 사내의 콤플렉스가 있었고, 콤플렉스를 만든 사내의 아버지가 있었고, 사내의 재능과 야심과 야비함이 있었다. 그 많은 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또 쌓인 흔적인 것이다.
또 다른 케이스를 보자.
결국 신중현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한국 땅이 싫기도 하고, 있어 봐야 소용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무렵 베트남전이 한창이었고, 미 8군 무대에 섰던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베트남으로 위문 공연을 가면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국인이 미국에 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신중현은 미국으로 가기 위해 우선 전선 위문 공연팀에 합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중현 선생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며칠 후면 베트남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날도 미 8군 막사 안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데, 새벽부터 유니버설 레코드사의 부장이 와서 자기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대박 났어!”
잠결에 ‘뭔 대박?’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전말은 이렇다. 신중현의 미 8군 후배 중 자매 댄서가 있었다. 이들이 베트남에 가기 전 판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판 하나를 프로듀스 해줬다. 신곡은 한 곡밖에 없었고, 이전에 발표했다가 주목을 못 받은 곡과 번안곡 등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 앨범이 대박을 낸 것이다. 이 자매 댄서가 바로 펄 시스터즈였다. 이 앨범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다음으로, 처음으로 10만 장을 돌파한다. 그해 펄 시스터즈가 성공하면서 베트남으로 갈 뻔했던 신중현은 이때부터 전설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이런바 신중현 사단 혹은 히트곡 제조기로써의 전성기를 연다.
드라마틱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외국 부대의 막사 생활에서 전설이 되는 전복과 반전의 과정에는 인위적 개입이 보이질 않는다. 다만 음악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만 있을 뿐이다.
신중현은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에 모든 것을 걸었다. 굶어 죽을지언정 음악을 버릴 순 없었다. 그런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역사가 또 음악을 바꾼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두 권으로 된 약 700여 페이지의 책이다. 울고 웃기고 돌아서서 숙고하게 만드는 알찬 내용들로 가득 차 있지만 압권은 책의 앞부분에 있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는 캔자스시티의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뼈가 굵었고 솔로로 유명해졌다. 1950년대 초반 카운트 베이시 악단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을 때 음반사로부터 옛 동료들과 더불어 1930년대 베이시 스타일의 연주를 재건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레스터 영은 간단히 거절한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재즈 뮤지션은 끝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존재이므로, 지나간 것의 재현은 불가능하다’고.
나아가 레스터 영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재즈는 연주되는 바로 그 순간 딱 한 번 존재하는, 다시는 똑같이 재현할 수 없는 딱 한 번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지니는 음악이라고 말이다.
‘대통령(President)’을 뜻하는 ‘프레즈(Prez)’라는 애칭을 가진 위대한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Lester Yong)의 위와 같은 일화는 재즈, 나아가서 음악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디 음악만 그렇겠는가.
‘이건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되고 지정되는 것은 그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가 없다. 복사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그 순간, 딱 한 번 존재하는 그 찰나 순간순간들을 어떻게 규정하겠는가? 그 순간들을 규정한다치자.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 인간은 넘쳐나는 정의와 개념들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지나간 것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고유한 그것이라는 명언을 남긴 것이다.
자기 정체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10년 전의 나와 지금이 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동일한 인물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산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이름을 지정하여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대추 한 알을 이루는 수많은 그것들, 또 그것들을 이루는 그것들의 그것들 간 미미한 사건 하나라도 생긴다면 – 끝도 알 수 없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가득 채운 것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사건도 발생하지 않고 모두가 동시에 멈추는 순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숨 한 번 들이키고 내쉬는 것도 중대한 사건이다! – 전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 대추는 ‘그’ 대추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전체가 움직임과 변화 속에 있다. 그러니 나라는 것도 단 하나의 오리지널리티를 지닌 순간과 순간들의 연속일 뿐이다.
장마철이다. 유리창에 빗방울들이 떨어져 맺힌다. 저 하늘 위 어딘가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이 하필 여기 내 앞에, 공교롭게 내 앞에 떨어져 내렸다. 누구냐 넌?
내 앞에 떨어져 내릴 때까지 무수한 부딪힘과 어긋남이 있었으리라. 수많은 순간 운명들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내 앞에 왔으리라.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