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에는 미용실에 갔다. 미용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말은,
"어머, 언니 염색을 되는 대로 한 것 같은데 그게 참 자연스럽게 나왔네. 이런 색은 일부러 만들기도 힘들어."
미용사의 칭찬이었다.
미용실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꺼린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리 좋지 않다. 그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미용실에서 강권 당했던 기억들이 좋지 않게 남았다. 지금보다 더 돈이 없던 대학생 때 그러니까 한 20년 전쯤 - 쿠폰인지 카드할인인지를 해준다고 해서 방문한 이대 앞 모 미용실에서는 상한 머릿결과 약의 성분 등등을 이유로 부르는 값이 점점 높아졌고 나는 거의 20만 원이 되는 돈을 주고 매직펌을 했다. 일단 미용실 의자에 앉고 나서 설명을 듣다 보면, 하려고 했던 시술을 취소하기가 힘들다. 미용사 눈치를 보며 "네... 해주세요." 하게 된다. 그날 말고도 그동안 여러 미용실에서 얼마나 많은 영양 시술을 권유받았던가. 가면 듣는 단골 멘트 "어머, 머릿결이 너무 상했어요. 이거 안 돼." 그러면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벌거벗은 양 부끄럽고 민망해졌다. 게다가 미용실 의자에 앉았을 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어쩜 그렇게 유달리 못생겼는지. 여튼 미용실만 가면 이상하게 자존감이 지하로 파고들어간다. 아마 내가 똑부러지지 못하고 소심해서 그런 거겠지. 다른 사람들은 잘 거절하고 있었겠지?
또, 미용실의 스몰토크가 불편하다. 미용 시술을 받는 시간은 짧으면 30분, 길면 4시간이 넘을 수도 있는데 그동안 미용사의 성향에 따라 얘기를 나누게 되기도 한다. 나는 처음 만난, 혹은 아주 오랜만에 잠깐 만난 사람과 정답게 나눌 마땅한 말을 못 찾는 경우가 많다. 시술해 주시는 분들도 손님과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을 텐데(손도 바쁘고 일도 많은데 나라면 얘기를 안 하고 싶은 날이 많을 것 같다) 의무감에 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런 눈치 보기가 다소 불편하여 미용실에서는 가급적 책을 가져가서 읽는다. 아주 열심히 읽는다.
집에서 머리를 자르면서부터 이런 고민을 덜하게 되어 좋았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 아니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엄마가 머리를 잘라주셨다.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준비물을 챙긴다. 의자, 집에서 제일 잘 드는 가위, 매끈한 보자기, 물이 담긴 분무기, 빗, 자른 머리칼을 정리할 빗자루와 걸레. 분무기로 살짝 머리에 물기를 주고, 가장자리부터 잘려 나가는 사각사각하는 가위질 소리를 듣다보면 잠이 솔솔 오는 날도, 엄마가 너무 많이 잘라버릴까봐 조마조마한 날도 있었다. 특별한 미용기술 없이 그저 긴 머리를 똑바로 자르기만 하는 헤어컷.
지난 글에서 망친 머리를 한 채 부모님댁에 간 날, 나는 가방에서 헤어컷 전용 가위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일반 가위, 하나는 숱가위) "엄마, 나 머리 잘라주세요."
엄마는 내 머리를 풀어보시고는 "어디서 머리를 이렇게 엉망으로 해왔어?"라고 마치 미용실 언니처럼 말씀하셨다. (웃음)
어렸을 때처럼 엄마는 보자기를 두르고 나를 의자에 앉힌 채 사각사각 서걱서걱 머리를 잘라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엄마, 옛날엔 이렇게 많이 잘랐잖아."
"응. 그랬지."
짧은 엄마의 대답 속에서 조금 아련함이 묻어난 것 같았다.
예전처럼 똑바로 정직하게 잘린 머리칼이 어깨 근처에서 나풀거렸다. 한껏 가벼웠고 유독 부드러웠다. 엄마는 깡총하게 묶은 머리꽁지를 보시며,
"누가 잘랐는지 참 잘 잘랐네!" 하셨다.
이번에 머리를 망친 건 참 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