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남다른 생활방식 중 하나는 각자 집에서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점이다. 항상 그러지는 않지만 웬만하면 그렇게 한다.
룸메는 머리가 아주 짧아서 사실 어려울 것이 없다. 데이트를 하던 시절에 짧은 헤어스타일을 정해서 깎기 시작했는데, 몇 번 미용실에 가더니 이발기(바리깡)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내가 생일선물로 사줬다. 그것으로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있다. 9mm와 6mm를 취향에 따라 번갈아 한다. 그냥 이발기로 머리 전체를 밀면 된다. 너무너무 귀찮을 때 한두 번 미용실에 가서 자른 적이 있지만 거의 항상 스스로 해오고 있다. 도움이 좀 필요한 순간도 있는데, 룸메가 머리를 골고루 다 민 다음 나를 부르면 가서 빼먹은 곳은 없는지, 고르게 잘 잘라졌는지 봐준다. 혼자서 밀기 어려운 뒷목 부분과 귀 뒤 부분은 내가 살짝살짝 밀어주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 머리를 자르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긴 머리를 직접 자르기는 쉽지 않으니까. 오래 전 티비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김부선 씨가 나와 자기가 직접 머리를 잘랐다는 말을 스치듯 했는데 그걸 보고 셀프 헤어컷 정보를 찾아봤다. 유투브에는 이미 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현직 헤어디자이너가 올린 영상을 보고 따라해 보았다.
허리를 잔뜩 숙여 머리칼을 모아서 이마라인 가까이에 고무줄로 묶고, 그대로 내려와 고무줄 하나를 더 묶은 뒤 고무줄을 기준으로 한꺼번에 싹둑 자르면 된다. 그러면 머리통의 굴곡에 따라 머리는 자연스럽게 층이 져서 잘리게 된다. (좀더 머리칼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추가 과정이 있는데 궁금한 분들은 유튜브를 찾아보세요) 층이 안 지게 하려면 머리를 똑바로 들고 잘라야 하는데 그건 혼자서는 못 하고 남이 해줘야 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층지게 자를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그 방법을 이용해 조금씩 층이 덜 나게 하려고 묶는 지점을 뒤로 슬금슬금 옮겨왔는데 그러다가...
좀 뒤쪽으로 묶어서 자르자니 혼자 하기가 힘들어서 룸메한테 묶은 부분을 싹둑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룸메는 열심히 잘라줬는데 자르고 나니 이게 웬일, 머리가 쥐 파먹은 것처럼 가위 자국이 많이 나고 층도 이상하게 져있었다. 하... 역시 유튜브가 시키는 대로만 했어야 하는데 뭔가 좀 변화를 줬더니 이렇게 되었구나. 룸메는 어쩔 줄 몰라했다.
룸메: 나는 니가 시킨 대로만 했어!
나: 으하하 이거 어떡하지?
룸메: 지금 미용실에 가. 이거 가야 돼.
나: 안 돼. 넘 창피해. 이걸 어떻게 설명해? 가면 엄청 무시당할 것 같단 말야.
룸메: 그럼 어쩌려고. 안 돼 미용실 가야 돼!
나: 일단 머리를 감아보자. 미용실 가더라도 머리는 감고 가야 되니까.
결론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그냥 뒤로 묶어버리면 뭐 보이지도 않고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 시대가 아닌가. 사람을 만날 일도 나갈 일도 없어서 외모에 딱히 신경을 안 써도 된다.
"어이, 히피!"
들쭉날쭉 내 머리를 보고 룸메는 히피 같다고 했다. 집에서 자르다보면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뭐. 뭔가 엄청나게 큰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미용실은 안 가도 될 것 같다. 우리 집 셀프헤어컷 정책은 아직 잘 지켜지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