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준가 Jan 05. 2022

두 번 철렁

어떤 폭탄 그 후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junga-pic/129



엄마와의 예민한 통화 다음 날이었다. 

아침부터 언니가 전화를 했다. 그 시각에 나는 무음으로 자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일어나서야 전화기를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를 보고 가슴이 철렁하며 든 생각은 '엄마가 언니한테 어제 일을 얘기했나? 언니가 나한테 뭐라고 하려고 전화한 건가?'였다. 그 생각에 곧장 따라온 감정은 '너무 싫다. 받기 싫다. 언니 말 듣고 싶지 않다. 전화 안 할래.'였다.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채로 오전을 모두 보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 다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리는 전화기를 보면서 또 망설였다. 이 전화를 받으면 언니가 뭐라고 할까? '너는 엄마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길래 엄마가 울기까지 하고 그렇게 서운해하시냐' 나무라며 따질까? 그런 마음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러나 전화를 언제까지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약간은 체념한 채로 받았다. 놀랍게도 언니는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아니 어제 엄마와의 대화는 전혀 몰랐고 그걸 신경 쓸 상황도 아니었다. 언니가 전한 것은 엄마의 팔이 부러졌다는 소식이었다. 두 번 철렁. 


그 저녁의 일은 이렇다. 엄마는 어제 저녁 김치를 담그다가 울리는 전화를 받으려고 거실을 가로질렀고, 거실 한가운데에 우연히 떨어진 물을 밟아 미끄러져 넘어졌다. 뒤로 엉덩방아를 세게 찧으면서 바닥에 손을 짚었는데, 그때 손목에 큰 부상을 입었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서 부어오르는 손을 보며 곧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렸고, 아빠가 오자 두 분은 차를 타고 신촌 세브란스에 갔다. 일단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 그곳이다. 그런데 마침 세브란스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응급실이 폐쇄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 분이 망연자실했을 때, 세브란스 의료진이 추천해 준 병원이 마포에 있는 다른 병원이었다. 두 분은 그 밤에 서울 시내를 돌며 병원을 찾았고 엄마는 추천받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고 엄마와 나의 감정의 골 따위는 전혀 중요치 않아졌다. 오히려 너무나 사소한 일로 느껴졌다. 엄마가 다친 사실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했다. 엄마 손목이 부러졌는데 나는 무섭다고 전화를 피했다니, 그 오전의 망설이던 내가 후회되고 미웠다. 어쩌면 엄마는 나와의 대화 때문에(언쟁 때문에) 어젯밤에 나에게 전화하지 못한 게 아닐까? 아주 약간의 부담이라도 엄마 마음에 들어와서? 그런 생각까지 이르자 더욱 내가 미워졌다. 


당장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아빠 혼자만 가능했다. 엄마는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손목의 뼈 두 개가 모두 부러졌는데 하나는 철심을 박고, 하나는 깁스로 고정하며 붙인다고 했다. 어릴 때에야 뼈도 잘 붙지만 나이 들수록 뼈는 약해진다. 게다가 엄마는 몇 년 전에 골다공증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기도 했다. 현재는 골다공증까지는 아니지만 골밀도가 낮은 상태이긴 하다. 





엄마가 수술을 잘 마치고 퇴원한 뒤 나는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는 퉁퉁 부은 손을 조심히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환자인데도 우리 엄마는 예뻐서, 오후의 부드러운 빛이 드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를 사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다들 엄마가 예쁘다며 칭찬의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활짝 웃었다. 


엄마의 걱정은 당뇨 환자인 아빠의 식사였다. 사 먹는 음식들은 너무 칼로리가 높아 아빠 건강에 나쁜데 아빠는 요리를 거의 못하신다. 아빠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엄마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또 엄마도 맛있게 드셔야 하니까 주문을 시작했다. 대형마트에서 인터넷으로 각종 레토르트 한식을 골랐다. 한 가지만 오래 먹으면 질리니까 국과 탕을 다양한 종류로 구성하고, 즉석밥도, 무가당 두유도, 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생선구이나 밑반찬도 챙겨 넣었다. 엄마는 여러 뭉치 배달된 음식들을 보고 뭘 이런 걸 이렇게 많이 시키냐며 말렸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나는 뭘 하라고요? 약간의 돈과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엄마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주문을 두 번 더 반복하고서야 엄마는 깁스를 풀 수 있었다. 


우리 사이에 어떤 감정의 골이 생기든 엄마의 안위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우리 관계의 본질이라는 걸 이번 일로 더욱 크게 알았다. 하지만 엄마랑 너무 오래 같이 있으면 또 잔소리-반항-갈등의 루틴이 생기니까 이렇게 잠깐씩 만나면서 서로 애틋하게 지내는 게 인생의 꿀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엄마 우리 건강하게 안전하게 그리고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애틋하게 지내요. 그래야 더 사랑이 커져. 진짜야. 우리 평안합시다. 그리고 엄마네 거실에 미끄럼 방지 매트 까는 거 생각해 보세요. 아니면 욕실 바닥에 붙이는 미끄럼 방지 스티커라도 몇 개 붙일까? 에휴. 뼈 조심합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