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제주방송, 제주유랑

by 윤준가



돌문화공원에 갔을 때 돌에 낀 회색 부스럼 같은 것을 보고 윗집 언니가 이끼라고 알려주셨다.
"이 이끼는 다른 이끼 위를 덮으며 자라는 종인데, 회색 돌이끼가 있다는 건 이 돌이 아주 깨끗하다는 증거예요. 회색 이끼를 걷어내면, 봐요, 초록색 이끼가 또 있죠."
"와, 언니는 어떻게 이런 정보까지 아세요? 따로 공부를 하셨어요?"
"하하, 아뇨. 제주방송 보면 다 나와요."

오늘 아침에 씻고 나서 제주mbc를 잠시 보았다. 제주라고 해서 제주방송이 계속 나오는 게 아니라 특정 시각에 돌아가며 나오는 것 같다. 그 외에는 전국 방송을 틀어주고. (케이블 서비스의 특성인지도 모르지만. 이 집은 올레티비.) <생방송 제주가 좋다>라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는데 대정향교에서 전통혼례를 올리는 장면과 성인식을 치르는 장면이 나왔다.

대정향교는 2011년 가을, 친구와 둘이 5박 6일 일정으로 제주에 왔을 때 우연히 가보았다. 숙소가 근방이어서 바닷가로 산책 나가는 길에 헤매다가 도착한 곳이었다.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한 한옥이 있었고 구경 삼아 한 바퀴를 돌고 나가려는 때, 한 사내가 나타났다. 우리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투리 때문이 아니라, 언어 능력이나 지각 능력에 문제가 있는 분 같았다. 그분은 계속 말을 걸며 뒤를 따라왔고,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정말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무서움이 훅, 밀려왔다. 그 와중에 키가 큰 친구는 향교 문에 머리를 세게 찧었다. 어쨌든 그 길로 걸음을 재촉해 바다를 찾아갔고, 그제야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돌아올 때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악의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운 성인 남성의 의도를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근력이 약하다는 물리적 한계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지금 똑같은 상황이 되어도 같은 행동을 할 것 같다. 함부로 용기내지 않기로.

오후에는 윗집 언니와 함께 제주유랑을 찾아갔다. 제주유랑은 정해진 장소 없이 바닷가를 다니는 푸드트럭(커피트럭?)이다. 커피 음료와 샌드위치를 파는데 치즈가 잔뜩 들어간 허니버터샌드위치가 유명하다. 해변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꾸준히 영업을 하며 발전하고 있어서 주민들 사이에 평이 좋다고 한다. 커피도 맛있고 샌드위치도 맛있었다. 치즈가 주욱 늘어나는 게 볼만했다. 게다가 경치 좋은 곳에 있어서 돗자리를 깔고 먹고 마시는 재미가 좋았다. 종달리 바다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결을 보며 한가로운 낮과 뜨거운 햇볕을 깊이 느꼈다. 그리고 아까도 바로 그 바다로 돌고래 떼가 지나갔다고 한다! 또 지나갈 수 있다고 해서 바다를 열심히 바라봤지만 우리가 있는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차를 얻어탄 김에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둔 식재료들이 바닥났다. 사람 입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고작 몇 주를 지내면서도 이렇게 양손 가득 장을 봐야 먹고살 수가 있구나. 집에 휴지가 떨어져서 사야 했는데 30롤짜리밖에 없었다. 우리에겐 너무 많은데. 남겨두고 가면 다른 분이 쓰시겠지.

저녁에는 잠시 나가 노을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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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쭈우우우ㅜ웅ㅇㅇ우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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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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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랑이 있던 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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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거대 샐러리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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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아래서 친구들하고 쉬다가 나를 보고 다가오는 니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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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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